<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연습하고 있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노란리본 제공
“그 무렵 나는 <뉴욕 타임스> 국제판에 매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럼으로 쓰고 있었다. 4월엔 당연히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의문의 참사에 대해 썼다.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는데 팩트와 근거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편집자가 그 발언의 근거를 물어왔다.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더니 그런 과감한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작가의 말’에 작가 김영하는 저렇게 썼다. 그의 예감은 맞았고,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을 바꾸었다. 예술도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세월호를 언급하고 있다. 김영하는 <아이를 찾습니다>를 쓰는 내내, 집필 직전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발간된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도 비슷하다. 책에 수록된 단편 7편 중 6편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쓰였고, 대부분의 주인공은 무언가를 상실했던 시간에 결박되어 있다.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애도한다. 이는 무대에서도 그렇다. 연극연출가들의 모임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세월호2017’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한다.
2015년 활동을 시작한 첫해부터 혜화동1번지 6기 동인들은 끈질기게 세월호에 매달렸다. 2015년 ‘세월호’를 시작으로, 2016년 ‘세월호 이후의 연극, 그리고 극장’ 등 매해 기획초청공연의 주제로 세월호를 선정했다. 올해 역시 ‘세월호2017’이라는 주제 아래 8편의 공연을 선보인다. 세월호와의 거리는 각각 다르나 모든 작품의 중심에 세월호가 있다.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연습하고 있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노란리본 제공
시리즈를 여는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는 그중 세월호와 가장 근접한 작품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출연하는 이 공연은 세월호 이후 그들이 주변에서 받았던 따가운 시선과 따사한 시선 모두를 아울러 표현한다. 결국 상실 이후 삶을 견뎌내고 있는 자신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공연되는 <유산균과 일진(日辰)>은 매일 유산균을 먹으며 복통을 견디는 여고생과 매일 그날의 운세를 보며 심통(心痛)을 견디는 유가족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를 두고 이연주 연출은 “개인의 고통은 상대적일 수 없다. 절대적이라 비교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연결될 수 있다”며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4 포(Four)>의 주인공은 피해자들이다. 흥미로운 건 피해자들이 모의재판을 여는 극중극을 진행하며 살인범과 배심원, 법무부 장관, 교도관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의 결을 포착해낸 가와무라 다케시의 2012년 작품이다. <검은 입김의 신>은 이번 시리즈 중 세월호와 가장 거리를 멀리 둔 작품이다. 연극은 1980년대 강원도 사북탄광을 배경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막장에 들어간 가장을 주인공으로 한다. 직접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대목은 없지만, 극중 가장을 세월호 부모에 대한 은유로 읽어도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연출가 부새롬은 말한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는 세월호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작품이다. 공연에 앞서 배우들은 팽목항과 안산분향소를 방문했고, 이때의 경험과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을 공동창작했다고. 구성을 맡은 백석현 연출은 “무거울 법한 주제이나 너무 가라앉지는 않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할미꽃 단란주점 할머니가 메론씨를 준다고 했어요>는 계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이 망명을 꿈꾼다는 내용의 일종의 우화다. 여기서 계모가 전 정권, 아이들이 세월호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을 터. 윤미현 작가는 특히 ‘계모’라는 두 음절이 가진 함축적이고 거대한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윤리의 감각>은 ‘참사 이후의 참사’를 줄곧 고민해온 작가 구자혜의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를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닌 저 멀리 아주 먼 시절의 일로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그는 “가해자가 가해를 바라보는 모습, 혹은 가해자가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지점”을 보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시리즈의 대미는 <비온새 라이브>가 장식한다. 라이브 주점 ‘비온새 라이브’를 운영하는 온새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여기 모인 여덟 작품의 창작자들은 저마다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고민의 깊이만큼 세월호에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아직도 세월호냐.’ 그런 이에겐 김애란의 표현을 빌려 대답하겠다. 여전히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유족의 심정이 저렇지 않을까. 나아가 상실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심정 아니겠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세월호는 상실에 대한, 상실 이후 견뎌야 하는 삶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 공감하는 이유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