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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낡은 동네에 스며들어 목소리 들어주는 ‘참견자들’…다시, 골목이 뛴다

등록 2018-01-17 05:01수정 2018-01-19 11:06

전문작가들이 지역에 찾아와 단기간에 작품을 만들어놓고 사라지는 게릴라식 공공예술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지역 공동체의 맥락을 읽고 밀착하려는 예술가들의 생각도 더욱 깊고 치열해졌다. 이들은 동네에 터를 박고 주민과 어울리면서 교감, 정서적 치유까지 예술작업으로 아우르는 하티스트(하트+아티스트)가 되고자 한다. 또 설치·글쓰기·토론회·축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의 매너리즘에 균열을 내고 동네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아티스탕스’(아티스트+레지스탕스)가 되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듣고’ ‘스며들어’ 어울려 ‘놀고’ ‘터잡으면서’ 진일보한 마을 재생을 꿈꾸는 작가들의 현장을 살펴봤다.

듣다

김정헌 작가 등 ‘이야기청’ 프로젝트

성북동 노인들의 이야기 기록하며

소외된 역사 대물림·새 관계망 형성

도시재생의 핵심가치 되찾기 나서

동네 노인들의 삶을 듣고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전시했던 작가들이 지난달 22일 오후 전시장이었던 서울 성북동 선잠52에 다시 모여 밝게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정균·정효영·정무진 작가, 이민재 문화연구자, 황지원 문화기획자, 최점순 성북구 동선동 통장, 김정헌 작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동네 노인들의 삶을 듣고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전시했던 작가들이 지난달 22일 오후 전시장이었던 서울 성북동 선잠52에 다시 모여 밝게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정균·정효영·정무진 작가, 이민재 문화연구자, 황지원 문화기획자, 최점순 성북구 동선동 통장, 김정헌 작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왕년엔 별명이 ‘서총알’이었어. 행동이 잽싸고 몸이 다부져 동료들이 그렇게 불렀지. 자, 이제 특수요원들이 어떻게 위장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지 요령을 알려주지.”

지난해 11월23일 서울 성북동 주택가 골목의 대안공간 ‘선잠52’엔 ‘특수임무유공자 서초환 어른신께 배워보는 은신술 특강―나는 오늘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북파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서씨를 만나 구술 작업을 벌여온 신정균 작가가 젊은 동료 작가들과 경험을 공유하려고 만든 자리였다. 1967년 교관으로 차출돼 북한에 침투하는 부대원들을 교육시켰고 자신도 휴전선을 넘어간 적이 있다는 서씨는 훈련의 기억들을 되살려 발자국, 체취 등의 흔적을 지우고 몸을 숨기는 잠복·은신의 요령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신 작가는 “몰랐던 시대와 선배 세대의 경험을 담고 있었다. 세대 간 생각과 인식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은신술 특강’은 원로 작가 김정헌씨가 후배 작가·학자들과 함께 꾸린 ‘이야기청’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야기청은 지난해 4월 김 작가와 청년작가, 젊은 연구자들이 꾸린 네트워크 모임. 사회적 고립이 심화하는 도시에서 노인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해 새 관계망이 생겨날 수 있는 공공예술을 해보자는 취지다. 기획에 참여한 신정균, 강기석, 박건희 작가, 이은희·정혜원 작가팀, 미디어작가그룹 ‘무진형제’, 사회학 민속학 문화학 연구자팀 ‘노오력 탐방단’은 성북구 노인들을 모셔와 다과와 식사를 하며 집중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토대로 지난 연말 선잠52에선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한 과정을 담은 워크숍 ‘이야기 듣는 길’(11월17~29일)과 구술을 영상, 퍼포먼스 등의 실험적 이미지로 풀어낸 전시 ‘이야기 담는 집’(11월30일~12월10일)이 잇따라 펼쳐졌다.

성북구에 사는 여성 노인들이 가진 ‘이름’과 그들의 역사에 대해 ‘내 이름은 ○○○입니다’란 제목의 워크숍을 벌인 이은희, 정혜원 작가는 자기 이름을 쓰지도, 듣지도 못했던 할머니들의 한맺힌 회고담을 불러냈고, 정혜원 안무가는 이를 몸짓으로 풀어냈다. 60~70여년 전 노인들의 아련한 태몽담을 새겨들은 ‘무진형제’는 태몽에 등장하는 장닭, 미꾸라지 등의 영물을 새긴 도장을 파서 인터뷰 육성과 함께 전시한 뒤 나눠줬다. 석관동 의릉 앞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인생유전 이야기를 들은 강기석 작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로 다시 옮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선잠52에서 다시 만난 김정헌 작가와 이야기청 작가들은 “이번 작업이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고, 예술에서 소통과 공감의 의미에 눈뜨게 하는 기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을 ‘참견자’로 소개한 김 작가는 “노인들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 시대, 공간의 소중한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발화한 이야기를 젊은이들이 대물림으로 듣는 프로젝트를 오래전부터 별러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야기청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경청을 통한 의미찾기에 몰입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도시재생의 핵심이 사람 사이 교감이란 것을 이들 작업은 일러주고 있는 셈이다.

스며들다

“우리 그림이 작품이 되어버렸네”

성벽 옆 자리잡은 충신동에선

할머니들 애환·자부심 담긴 20여점

미술가들이 골목길 벽화로 재구성

오세린(뒷줄 왼쪽부터), 강영민, 박상하 작가가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마을 벽화 작업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서서 그림을 들어올리고 있다.
오세린(뒷줄 왼쪽부터), 강영민, 박상하 작가가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서 마을 벽화 작업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서서 그림을 들어올리고 있다.
“그냥 장난치는 줄 알고 그린 건데, 작품이 되어버렸네. 우리 그림 갖고 영화까지 만들 줄은 몰랐소.”

지난달 20일 저녁 서울 충신동 노인정 ‘행복충전소’에 모인 할머니들은 불쑥 찾아온 강영민, 오세린 등의 작가로부터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석달 전인 9월, 한양성벽 길섶의 동네 정자 옆 길바닥에서 작가들과 워크숍하며 그렸던 그림들을 작품 달력으로 갈무리해 온 것이다. 워크숍 때 할머니들이 신산한 삶을 털어놓으면서 그린 그림들을 작가들이 벽화로 옮기는 광경 등을 담은 김기훈 감독의 다큐 동영상도 처음 선보였다. 할머니들은 기쁨에 겨워 막걸리와 팥죽을 돌리며 즉석 잔치를 벌였다.

앞서 11월말 할머니 20여명의 그림은 작가들의 손으로 성벽 아래 동네 골목길 두 집의 벽과 담벼락에 공공미술 벽화로 재현되면서 ‘동네컬렉션의 탄생’을 알렸다. 울퉁불퉁 거친 선에 묘사가 얼핏 서툴러 보여도 개성적인 필치와 색감으로 자화상과 북악산, 낙산 아래 동네 풍경, 숲과 꽃 등을 그린 작품이 벽을 뒤덮었다.

충신동은 동대문과 한양성벽 서길 사이에 자리잡은 서민 동네다. 9월 5차례 워크숍을 하며 처음 그림을 그려본 할머니들 가운데는 한국전쟁 직후에 성곽을 표지로 보고 찾아와 삶터를 꾸렸던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림에는 지난 삶에 어린 애환과 충신동, 고향에 대한 자부심 등이 어김없이 표출됐다. ‘여기 앉아 있으면 도봉산처럼 시원해’란 문구를 써놓고 풀숲 정자에 앉은 김순희 할머니의 자화상, 꽃 옆에 걸터앉은 자신을 그려놓고 ‘나는 서울 본터빼기다’라고 적어놓은 권경희 할머니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함께 참여한 김부자 부녀회장은 “성벽을 집 담벼락 삼고, 식수 물동이 지고 까마득히 줄섰던 과거 이야기들이 그림 속에 다 녹아 있다”고 했다.

벽화는 완성 때까지 험난한 고비를 거쳐야 했다. 2년 전 옆동네 이화동 벽화를 주민들이 무단철거한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또다른 사달을 만들기 싫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작가들은 일일이 집을 찾아가 벽화의 주인은 동네 어르신들이라며 읍소하고 어르신 자식들의 직장까지 찾아가 설득하는 등 오해를 걷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틀 만에 여론은 찬성으로 돌아섰고, 11월말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힌 실물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노인정의 할머니들과 작가들은 지난 곡절을 떠올리면서 막걸리잔을 부딪혔다. 새해엔 더 많은 충신동 골목길에 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벽화가 그려지고 작가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작업을 돕기를 기원했다. 뒤이어 그림을 자랑하는 할머니들의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고, 행복충전소의 바깥 언덕길에는 눈송이가 나풀나풀 내려앉기 시작했다.

놀다

쓰레기 뒤덮인 청계천변 상가 옥상

‘동대문옥상낙원’으로 재탄생

주변 노동자들의 놀이터 자처하며

자유로운 이벤트·커뮤니티 형성

‘동대문옥상낙원’(DRP)이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사들과 함께 자투리천으로 돗자리·가방 등을 만드는 ‘자투리비치 스튜디오’ 행사를 벌였다.  동대문옥상낙원 제공
‘동대문옥상낙원’(DRP)이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사들과 함께 자투리천으로 돗자리·가방 등을 만드는 ‘자투리비치 스튜디오’ 행사를 벌였다. 동대문옥상낙원 제공
“청계천변 1층 상가 한 칸의 임대료가 월 500만원이에요. 저희는 월세 30만원. 물론 40년 동안 방치된 옥상에서 쓰레기 수십톤을 치워야 했지만 300평 넘는 저렴한 놀이터가 생겨났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천변 동대문신발종합상가 B동 옥상에서 만난 이지연씨가 말했다. 동대문옥상낙원(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그는 공공미술가 박찬국(플래너), 김현승(메이커)씨 등과 함께 4년 넘게 이곳을 지켜왔다.

이들이 이 옥상을 발견한 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선 뒤 주변의 노점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의뢰한 동대문리서치 작업을 수행하던 2013년 가을이었다. 1970년 지어진 이 상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축구대회를 관람하러 동대문운동장(당시 서울운동장)에 왔을 때 혹 저격당할까봐 애초 7층이었던 건물 설계를 5층으로 바꾼 곳이었다. 이듬해 봄 서울시청년허브의 지원을 받는 ‘청년혁신활동가’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웠다. 폐기물 중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옥상유물 발굴 파티’(2014년 4월)를 벌이며 동대문옥상낙원은 천국의 문을 열었다. 이들은 본래 엘리베이터탑으로 설계됐던 곳에 최소한의 건축적 손질을 보탠 뒤 다락방을 차렸고 텃밭을 만들었다. 동대문에 눌러앉은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면 10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에 있는 의류부자재시장-창신동 봉제공장-상가의 유기적 관계에 흥미를 느꼈고 봉제사, 디자이너, 의류학과 학생들, 상품기획자(MD) 등과 집담회를 6차례 열었다. 디자인부터 제작·유통까지 1주일 만에 해결되는 동대문의 살인적인 단납기 시스템을 알게 됐고, 늘 재봉틀에 앉으면서도 남들이 만들어달라는 대로만 작업하는 봉제사들의 삶도 이해하게 됐다. 박 작가는 ‘짝퉁’(불법 복제) 티셔츠 재고품을 모아 총자국을 낸 뒤 봉제사들이 마음대로 이를 메워 자유로운 무늬의 티셔츠를 제작하도록 했고(<동대문 오리지널>), 가수 ‘미미시스터즈’로부터 옷을 기증받아 봉제사들의 솜씨로 새로운 옷을 지어냈으며(<홀리데이 팩토리>) 하루 25톤가량 발생하는 동대문의 자투리 원단을 골라내 서울무도회 참여자들에게 의상 장식용으로 제공하는 <멘붕키트>를 제작했다.

서울 청계천변 동대문신발종합상가 B동 옥상에 보금자리를 틀고 활동하고 있는 ‘동대문옥상낙원’(DRP)이 지난 8월 주최한 쿠바파티. 동대문옥상낙원 제공
서울 청계천변 동대문신발종합상가 B동 옥상에 보금자리를 틀고 활동하고 있는 ‘동대문옥상낙원’(DRP)이 지난 8월 주최한 쿠바파티. 동대문옥상낙원 제공
동대문에서 리어카를 차려놓고 매일 다른 메뉴를 파는 ‘최순녀 할머니’가 발명한 ‘다기능 싱크대’ 홍보 영상을 찍거나, 주변에 있는 양봉가게에서 만난 손님으로부터 벌 치는 법을 전수받아 옥상양봉을 시도했다. 여기서 얻은 꿀로 만든 ‘꿀술’은 동아시아의 사회활동가들과 벌인 <이것저것 규탄대회>의 딸림행사인 ‘동아시아 안주 마라톤’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주·젠더 등의 다양한 이슈로 이야기를 나누는 <톱바>(top bar), 백일장(<낙원의 조건>), 영화 감상회(4D 영화제) 등 옥상낙원팀은 동대문의 지역적 맥락을 읽고 이를 놀이와 예술로 엮어내는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6년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전에서 프로젝트 부문 대상을 받은 이들은 수상소감에서 “생존에 매몰되지 않는 생존방식으로 삶을 지속하고자 한다. 삶의 안전망을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 조직구조로 설정하지 않고 상황을 감지하는 직관, 활동에 대한 의지, 호기심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터잡다

최백호 대장의 아현동 ‘뮤지스땅스’

버려진 공간을 신일 발굴 메카로

`뮤지스땅스&#39;는 버려진 지하도 공간을 새롭게 바꿔서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뮤지스땅스의 입구에는 음악하는 우리들의 지하본부라고 적혀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뮤지스땅스'는 버려진 지하도 공간을 새롭게 바꿔서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뮤지스땅스의 입구에는 음악하는 우리들의 지하본부라고 적혀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마포구 아현동엔 버려진 공간을 예술가들의 에너지로 부활시킨 곳이 여럿 있다. 몇년 전까지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의 쉼터로 쓰였던 아현동 6차선 도로 밑 지하보도. 지하철이 지날 때마다 소음과 진동이 있고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마포구와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가 머리를 맞댄 끝에 지하보도는 공연장과 녹음·믹싱·마스터링이 가능한 전문 녹음실, 개인 작업실과 밴드 연습실을 갖춘 ‘뮤지스땅스’로 거듭났다. 2014년 12월의 일이다.

지난달 28일 음악발전소장이자 뮤지스땅스의 대장을 맡고 있는 가수 최백호씨를 만났다. 그는 “실력 있는 후배 음악인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뮤지스땅스 ‘대장’인 가수 최백호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뮤지스땅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뮤지스땅스 ‘대장’인 가수 최백호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뮤지스땅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음악인이 뮤지스땅스에 매료되는 것은 무엇보다 값싼 이용료다. 비싼 장비와 악기를 갖추고 있음에도 시간당 사용료가 개인작업실 4500원, 합주연습실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뮤지스땅스는 독립음악가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올해 벌써 3년째 진행중인 ‘무소속 프로젝트’는 신인들이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여서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엔 4개 팀을 선발했는데 무려 413개 팀이 실력을 겨뤘다.

죽어가는 공간을 심폐소생술로 살린 최 대장은 뮤지스땅스의 경험을 토대로 변화를 주고 싶은 곳으로 인근 선유도공원을 꼽았다. “선유도는 버스킹하기에 좋은 공간들이 참 많은데 카페 같은 것만 들어서고 있어요. 음악과 전시를 즐기는 ‘문화섬’으로 만들면 홍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환갑 맞은 낡은 목욕탕 ‘행화탕’은

복합문화공간 되면 생명력 얻어

지난해 10월 ‘예술로 목욕하는 날’을 주제로 행화탕에서 열린 공연. 축제행성 제공
지난해 10월 ‘예술로 목욕하는 날’을 주제로 행화탕에서 열린 공연. 축제행성 제공

아현동의 또다른 명소는 1958년 개띠로 올해 환갑을 맞은 건물 행화탕이다. 인디음악 공연기획자 서상혁씨와 <나는 가수다>의 기술감독을 맡았던 주왕택씨가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낡은 목욕탕, 행화탕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렸다.

지난달 29일 행화탕에서 만난 서상혁씨는 재개발 예정지에 속해 있는 행화탕을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노인”에 비유했다. 서씨는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기쁨을 주기 위해 피를 돌게 하고(전기, 난방 등의 공사), 얼굴을 손질하고(약간의 리모델링 공사), 영양분을 공급했다(전시,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고 설명했다.

2016년 5월 ‘예술 목욕’을 내걸고 문을 연 행화탕에선 그동안 설치미술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신용구), 회화, 영상 등을 선보인 <마포 이야기: 아주 가까운 이야기>, 동네 음악회 <아현동 마음씨>, ‘수중무용’과 음악이 어우러진 <행화탕의 뮤즈들> 등이 열렸다.

밤늦게까지 콘서트가 열리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쫄았다”는 서상혁씨는 “인사를 열심히 하고 다닌 덕분”에 이제는 동네 주민들과도 친해져 따로 연말 파티를 열기도 했다. 서씨는 “지금 나는 행화탕에서 ’정주의 여행’을 하고 있다. 한 공간에 상주하면서도 여행 다니듯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며 “행화탕이 재개발에 들어가면 이 여행도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이주현 김미영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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