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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의사 기득권과 싸운 의사, 마이클 샤디드

등록 2020-10-31 13:14수정 2020-10-31 14:08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30) 마이클 샤디드(1882~1966)

미국 첫 협동조합병원 건립 등
공공의료 적대시 의료계에 맞서
의협은 회원 박탈 등 박해 일관
마이클 샤디드.
마이클 샤디드.

대학에서 30여년 지내면서 나를 포함한 교수야말로 전문가 바보라고 항상 생각했고, 특히 의대 교수인 의사들이 그렇다고 생각해왔는데 며칠 전 최은영 간호사가 그렇게 말해주어서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 의사협회의 행태, 즉 공공의료 의사 수가 부족해 심각한 문제인 것은 객관적 자료로 명약관화한데도, 그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료제도를 확충하려는 정부의 개혁안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이 ‘공산독재’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투쟁을 한다며 ‘촛불은 이럴 때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회적 합의의 경험이 부족하고 ‘군대처럼 수직적인 문화, 상명하복도 강’한 탓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반인권적 폭력이 지배하는 도제식 의대 교육이 주요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소위 전문가-엘리트 특유의 직업 집단주의에 있다.

전문가 집단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폭과 다름없어 보이는 온갖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을 호도하기 위한 사기성 궤변을 일삼는 행태는 한국만의 일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특히 한국인이 모든 점에서 우러러보는 미국이 그러한데 의료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병원 벽에는 미국에서 이런저런 연수를 했다는 증서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그 연수라는 것이 정말 웃기는 짓거리라는 이야기는 의료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의사들이 골프채를 들고 뻔질나게 나다니는 미국에서 정말 연수한 것은 조직화된 의사집단에 의한 의료 이기주의인지도 모른다. 아니 현대적인 의료제도가 미국에서 들어온 탓에 의료 이기주의가 처음부터 깊게 뿌리내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과거에는 물론이고 이번에도 의사협회를 탈퇴하거나 퇴출당한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반면 미국에는 의료 특권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했던 노력 때문에 의사 면허증을 박탈당하고 의사협회에서 퇴출당하는 등 입신양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히는 결과를 낳을 만큼 헌신적인 의사가 있었다. 바로 20세기 초 오클라호마주 엘크시티에 협동보건시스템을 세운 의사 마이클 샤디드다.

마이클 샤디드. okhistory.org
마이클 샤디드. okhist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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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협 때문에 의료보험 도입 좌절

그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줄곧 1등을 해서 일류 대학 의대에 진학한 자가 아니다. 1882년 당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레바논의 지극히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12남매 중 9명이 죽는 비참함 속에서 막내로 겨우 살아남은 그는 베이루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6살에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짐꾼 행상을 하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값싼 보석과 단추를 팔았던 그는 고학으로 어렵게 의대를 다니면서 사회당에 입당했다. 1929년에 쓴 <민중의 의사>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그는 의대 입학을 제한함으로써 의사협회가 의사의 공급을 줄이고 의사의 수입을 올리는 독점을 형성한다고 보고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약탈적이라고 비판했다. 개업 직후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사로 살면서 1923년 오클라호마주 엘크시티 농부들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적당한 가격의 병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일찍, 더 오래 아프고, 가장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할 때 가장 적게 치료를 받는다. 그들은 아프기 때문에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농민 환자들의 모임을 소집하고 엘크시티에 협동조합이 소유하는 진료소와 병원의 설립을 제안했다. 오클라호마 농민조합은 그의 제안을 지지했으며, 1931년 지역사회 보건협회 주도로 병원이 문을 열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협동조합 의료기관이었다.

그러나 의료계는 그를 냉대해 그가 20년 넘게 회원이었던 미국의사협회에서 쫓아내고, 배상책임보험 대상자에서도 제외시켰다. 오클라호마주 의사협회는 샤디드의 면허를 취소하려고 하고, 샤디드와 뜻을 함께하여 협동보건 시스템에 종사하려는 의사들의 신분을 위협했다. 의사협회는 일반인이 의료제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의사협회는 의료협동조합의 설립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그 법안은 농민조합의 도움으로 부결되었다. 샤디드는 “국가를 독재와 혼돈의 길로 이끄는 특권층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선언하고 의사협회를 비롯하여 그것에 동조한 상류층과 그들의 심복인 보수 언론과 싸웠다. 샤디드가 만든 협동조합은 1934년 병원과 보건정책을 통제했고, 1939년까지 병원은 오클라호마 남서부 1만5천명의 농부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러나 미국의사협회는 의료 민주화를 더욱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거부하여 1929년의 대공황 이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뉴딜정책에서 채택된 사회보장제도에서 유일하게 의료보험제도를 제외시켜 지금까지도 미국에 공공의료제도가 없다시피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워싱턴에서 샤디드가 중심이 된 조합 결성 시도를 방해한 의사협회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려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1938년 의료개혁만이 아니라 1948년 트루먼 정부에서 시도한 의료개혁에도 반대하면서 공공의료를 “퇴폐한 국가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비난받아 마땅한 시스템”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샤디드는 워싱턴 디어파크에서 건강 협동조합 출범과 집단 건강 협동조합을 결성해 조직위원회를 도왔고, 1947년 미국협동조합보건연합을 설립한 뒤 1949년까지 재단 총재를 지냈다. 말년에는 당뇨병을 앓아 두 다리를 잃었으나 혼자 휠체어를 타고 러시아로 건너가 사회화된 의학을 강의하고, 미국과 유럽 전역을 돌며 협동 의료 서비스를 옹호하는 연설을 한 그는 1960년 레바논 고향 마을에 하라문 병원을 세우고 1966년 84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샤디드. 위키피디아
마이클 샤디드.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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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의사 파업 때의 교훈

캐나다에서도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파업이 1960년 역사상 최초로 일어났다. 60년 전에 일어난 그 파업에서도 2020년 한국에서처럼 공공의료가 ‘빨갱이짓’이라면서 자신들이 ‘공산독재’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투쟁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질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보수 언론이 동조한 것도 60년이라는 시간과 캐나다라는 공간 격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유사했다. “정부로부터 명령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점에서 우리 시대의 대제사장”이라고 비판받은 당시 캐나다 의사의 대단한 신분도 오늘의 한국 의사와 일치했다.

단 하나의 차이라면 60년 전 캐나다에는 촛불집회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니다. 정부의 대응도 달랐다. 캐나다 정부는 외국인 의사를 초빙하여 의료공백을 메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파업이 실패하고 정부의 공공의료개혁이 성공한 점도 오늘의 한국과 달랐다. 전문가는 민중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확립된 점이 달랐다. 그렇다. 바로 민주주의 문제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민중은 물론 정부도 전문가의 이기주의에 복종한다.

샤디드의 공공의료개혁은 2016년과 2020년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의 공약에서도 나타났지만, 그가 두번 다 실패한 탓에 샤디드의 꿈은 여전히 193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그쳤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것을 좌절시킨 미국의사협회처럼 한국의 의사협회도 언젠가 그것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의료보험제도의 실시는 기적과 같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20년의 한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능적으로, 본질적으로 민주화에 역행하는 전문가 이기주의를 어떻게 얼마나 약화시키느냐 하는 민중의 의지와 능력에 민주주의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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