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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히치카스, 힙합으로 이란 신정정치 흔들다

등록 2020-12-26 13:17수정 2020-12-26 22:26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34) 히치카스(1984년~)

전통악기와 힙합 비트 결합한 음악
이란 반정부 시위 때 널리 불려
젊은층의 저항 무기로 떠올라
히치카스의 공연 모습. 위키피디아
히치카스의 공연 모습. 위키피디아

30년 전 이란 법학 교수와 반년을 노팅엄대의 같은 기숙사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란은 이슬람법학자 통치체제여서 가끔 그를 어용학자니 권력 추구자니 하며 야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슬람 신정정치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보였다. 이란에서는 1979년부터 국회의원이 직선 4년제이고 대통령도 직선 4년 중임제로 정권이 명백하게 교체되기도 해서 적어도 그 점에선 우리보다 민주화가 빨랐다. 선거 연령도 15살부터여서 우리보다 선진이고, 가장 최근 선거인 2017년 대선에서는 18살부터 92살까지 1646명이 출마한 점도 선진이라면 선진이다. 그때부터 반정부 시위도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2019년 11월에는 수백명이 죽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때 히치카스(Hichkas)라는 래퍼가 부른 노래가 ‘그는 주먹을 휘두르네’다. 그 제목은 다음의 후렴에서 나온다.

‘페르시아 랩의 아버지’

“그는 주먹을 휘두르네
그는 주먹을 휘두르네
모든 걸 도둑맞은 그에게 남은 거라곤 입술과 사막의 갈증뿐
그의 모든 꿈을 죽인 그들에게 받은 건 하나도 없네”

이어 1절이 나온다.

“규제는 풀렸지만 행복과 복지는 없네
식민지 조국은 인민을 위해 단 한푼도 쓰지 않네
밤낮으로 일하지만 월말에는 돈을 빌려야 하네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네
그들은 시민이 아니라 노예를 원하네
감옥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네
수십년간의 살인과 파괴가 끝나기를 원하지만
몇년 동안 울기만 한 그에게 이젠 최루가스로 흘릴 눈물만 남아 있네
나라에 차별이 요란한데, 인민에 대한 부정은 없다고 하네
모두 로비로 일자리를 구했으니 기술도 필요 없네
온 나라를 큰 우리로 돌려놓고도 죄수가 없다 하네
그들은 사람들 옷을 벗기고 왜 아무도 이슬람식 옷을 입지 않는지 궁금해하네”

그리고 합창이 나온다.

“그는 소리치네
누가 그 대학살을 잊을 수 있을까?
그는 진심으로 소리치네
‘우리 모두 함께’”

히치카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소로시 라슈카리는 1984년 테헤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번역을 공부했지만 힙합을 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테헤란의 지역번호를 딴 021이라는 슈퍼그룹(다른 그룹이나 솔로 활동으로 이미 알려진 음악가들이 모여 결성한 음악 그룹)을 창설하여 대중음악에서 래퍼의 수용을 막기 위해 이슬람 정권이 쳐놓은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열로 인해 가사를 강제로 수정당하거나, 음반이 전량 압수당하거나, 공연 도중 구속되거나, 방송을 금지당하는 일이 다반사인 이란에서 사회문제와 젊은 세대에 대해 페르시아어 랩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은 그의 초기 음악은 이란의 전통악기와 도시 비트를 결합하여 동서양의 혼합 장르인 하이브리드 장르를 탄생시켜 ‘페르시아 랩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란 밖에서 2005년에 발매된 첫 앨범 <아스팔트 정글>은 이란 최초의 힙합 앨범으로 다음의 ‘좋은 날이 올 거야’가 대표곡이었다.

“좋은 날이 올 거야.
서로를 죽이지 않을
서로 나쁘게 보지 않고
친구가 되고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아하
초등학생 시절처럼
직업이 없는 사람이 없고
우리 모두 이란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나는 벽돌을 들고 너는 시멘트를 넣고
피곤하지 않게
이 모든 피의 비가 내린 뒤
무지개가 피어날 거야
구름은 돌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야
경주로는 튤립처럼 붉지 않을 거야

(중략)

피는 혈관에 머물고
하늘과 아스팔트를 잘 알지 못해
더 이상 솟구치지도, 굳지도 않아.
엄마는 더 이상 아이 무덤에 갈 수 없어

(중략)

하지만 좋은 날이 올 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좋은 날이 오면
선한 것 외에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거야

(중략)

하늘아! 와우! 얼마나 아름답니?
무덤 옆에는 초록, 풀들이 있네”

팔레스타인 해방 등도 노래에 담아

이란 하층민을 대표하고 이란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그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란 힙합의 가장 위대한 래퍼 중 한명으로 언급된다.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캘거리대 등 여러 대학에서 초청 연사로 이란 시, 이란 언더그라운드 음악계, 인터넷이 이란 음악·출판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 그는 2009년 이란 대선 시위의 여파로 영국으로 이민을 간 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면서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 쿨 지 랩을 포함한 다수의 인터내셔널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함께 팔레스타인 해방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노래했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네’가 포함된 두번째 앨범 <허용>을 최초 발표 8년 만인 2020년 3월 말에 발매했다.

그러나 히치카스만이 자유와 정의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1906년 제헌 혁명 이후 114년 동안 이란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군주제든 이슬람제든 통치자들은 그들을 속이고 또다시 권위주의 정권을 수립했고 더욱 잔인하게 사람들을 억압해왔다.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은 그런 억압을 더욱더 부채질했다. 그런 가운데 벌어진 2009년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터진 이란 녹색운동은 2010년의 튀니지 재스민혁명과 함께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다. 부정선거로 패한 개혁파 후보의 상징색인 녹색을 든 민중은 ‘신은 위대하다’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쳤고 사람들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프로필은 “내 표는 어디로 갔는가?”로 바뀌었다. 이슬람 공화국의 정의와 방향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옮겨진 민중의 함성은 녹색혁명이라는 시민 불복종으로 나아갔다. 당시 비폭력 시위에서 26살 여성 네다 아가솔탄이 사복 경찰의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전세계가 보았다.

이란 녹색운동이 튀니지처럼 혁명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2013년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 하산 로하니의 상징색이자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과 자유, 평등을 의미하는 보라색 지지운동으로 어어졌다. 그 결과 이란에서는 2013년에 8년 만에 보수강경파에서 중도개혁파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2015년 극적인 핵협상 타결로 지대한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의 일방적인 경제 제재 부활로 또다시 이란은 고립 상태에 놓여 더욱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가져왔다. 그래서 터진 2019년 말의 시위는 더욱더 격렬해졌고 정부의 대응도 전쟁을 방불케 했다. 소위 이슬람 혁명 40주년을 무색하게 한 그것은 내부자들 가운데서도 반성하는 목소리를 내게 했다. 올해 초에는 3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이란 친구가 영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이슬람 신정정치에 자부심을 갖는지 물어보고 싶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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