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34) 히치카스(1984년~)
전통악기와 힙합 비트 결합한 음악
이란 반정부 시위 때 널리 불려
젊은층의 저항 무기로 떠올라
(34) 히치카스(1984년~)
전통악기와 힙합 비트 결합한 음악
이란 반정부 시위 때 널리 불려
젊은층의 저항 무기로 떠올라
히치카스의 공연 모습. 위키피디아
‘페르시아 랩의 아버지’
그는 주먹을 휘두르네
모든 걸 도둑맞은 그에게 남은 거라곤 입술과 사막의 갈증뿐
그의 모든 꿈을 죽인 그들에게 받은 건 하나도 없네” 이어 1절이 나온다. “규제는 풀렸지만 행복과 복지는 없네
식민지 조국은 인민을 위해 단 한푼도 쓰지 않네
밤낮으로 일하지만 월말에는 돈을 빌려야 하네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네
그들은 시민이 아니라 노예를 원하네
감옥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네
수십년간의 살인과 파괴가 끝나기를 원하지만
몇년 동안 울기만 한 그에게 이젠 최루가스로 흘릴 눈물만 남아 있네
나라에 차별이 요란한데, 인민에 대한 부정은 없다고 하네
모두 로비로 일자리를 구했으니 기술도 필요 없네
온 나라를 큰 우리로 돌려놓고도 죄수가 없다 하네
그들은 사람들 옷을 벗기고 왜 아무도 이슬람식 옷을 입지 않는지 궁금해하네” 그리고 합창이 나온다. “그는 소리치네
누가 그 대학살을 잊을 수 있을까?
그는 진심으로 소리치네
‘우리 모두 함께’” 히치카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소로시 라슈카리는 1984년 테헤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번역을 공부했지만 힙합을 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테헤란의 지역번호를 딴 021이라는 슈퍼그룹(다른 그룹이나 솔로 활동으로 이미 알려진 음악가들이 모여 결성한 음악 그룹)을 창설하여 대중음악에서 래퍼의 수용을 막기 위해 이슬람 정권이 쳐놓은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열로 인해 가사를 강제로 수정당하거나, 음반이 전량 압수당하거나, 공연 도중 구속되거나, 방송을 금지당하는 일이 다반사인 이란에서 사회문제와 젊은 세대에 대해 페르시아어 랩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은 그의 초기 음악은 이란의 전통악기와 도시 비트를 결합하여 동서양의 혼합 장르인 하이브리드 장르를 탄생시켜 ‘페르시아 랩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란 밖에서 2005년에 발매된 첫 앨범 <아스팔트 정글>은 이란 최초의 힙합 앨범으로 다음의 ‘좋은 날이 올 거야’가 대표곡이었다. “좋은 날이 올 거야.
서로를 죽이지 않을
서로 나쁘게 보지 않고
친구가 되고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아하
초등학생 시절처럼
직업이 없는 사람이 없고
우리 모두 이란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나는 벽돌을 들고 너는 시멘트를 넣고
피곤하지 않게
이 모든 피의 비가 내린 뒤
무지개가 피어날 거야
구름은 돌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야
경주로는 튤립처럼 붉지 않을 거야 (중략) 피는 혈관에 머물고
하늘과 아스팔트를 잘 알지 못해
더 이상 솟구치지도, 굳지도 않아.
엄마는 더 이상 아이 무덤에 갈 수 없어 (중략) 하지만 좋은 날이 올 거야. 나도 알아!
그런데 좋은 날이 오면
선한 것 외에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거야 (중략) 하늘아! 와우! 얼마나 아름답니?
무덤 옆에는 초록, 풀들이 있네”
팔레스타인 해방 등도 노래에 담아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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