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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페르시아 제국의 빛과 그림자…2500년 역사 ‘타임머신 여행’ [ESC]

등록 2023-08-19 06:00수정 2023-08-20 17:42

여행 이란
‘세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조로아스터교 간직한 야즈드
‘반미·신정국가’ 초월하는 매력
양고기·향신료 등 먹거리도 풍성
에스파한 졸파 지역에 있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반크 교회.
에스파한 졸파 지역에 있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반크 교회.

에스파한에 가는 건 나의 오래된 꿈이었다. 이란 중부에 있는 에스파한은 페르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도시다. 국제뉴스를 오래 써온 기자로서, 이란은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던 2006년 처음으로 테헤란에 갔고, 2020년 이란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인 쿠드스부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국에 의해 암살된 뒤 긴장이 고조된 상황을 취재하러 또다시 테헤란에 갔다. 그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이란 문화의 중요한 곳들’을 신속하고 강하게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17세기 페르시아 도시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에스파한의 낙셰자한 광장에서 더위가 가신 밤에 시민들이 산책·운동을 하고 있다.
17세기 페르시아 도시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에스파한의 낙셰자한 광장에서 더위가 가신 밤에 시민들이 산책·운동을 하고 있다.

이란을 취재할수록 ‘반미국가’ ‘신정국가’로만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 나라의 복잡미묘함이 더욱 궁금해졌다. 위험한 나라라고 겁먹고 갔다가, 역사·문화의 깊이와 사람들의 따뜻함에 놀라게 되는 나라다. 이란의 역사를 알아야, 국제 정세도, 아시아의 역사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에스파한 같은 역사적 도시들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커져갔다. 지난 7월 이란을 연구하는 학자와 학생들을 따라나섰다. 비자는 이란 외교부 e-비자 시스템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주한 이란대사관에 가서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이란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카타르나 튀르키예(터키), 아랍에미리트 항공편으로 각각 도하·이스탄불·두바이를 경유해 14시간 이상 걸린다.

페르시아 문화의 중심 ‘에스파한’

이란은 하나의 도시에 갈 때마다, 다른 시대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다. 에스파한은 셀주크(1037~1194)와 사파비 왕조(1502~1736) 시대로, 페르세폴리스는 2500여년 전 아케메네스 제국으로, 야즈드는 이슬람화 이전 조로아스터교의 문화 속으로, 테헤란은 카자르 왕조(1779~1925)와 팔레비 왕조, 그리고 지금의 이란이슬람공화국 핵심으로 데려간다.

7월15일 에스파한에 도착하자마자, 낙셰자한 광장으로 달려갔다. 사파비 왕조의 강력한 통치자였던 샤 압바스(아바스 1세)가 1598년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건설한, 페르시아 도시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길이 510m, 너비 163m의 규모. 중국 베이징 톈안먼(천안문)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광장의 동서남북엔, 이맘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 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그랜드바자르로 들어가는 입구가 각각 배치돼 있다. 공식 명칭은 ‘이맘광장’이지만, ‘세상의 원형’이라는 뜻의 낙셰자한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어울린다. 47만개가 넘는 푸른 타일로 장식한 이맘 모스크, 왕실의 일상과 꽃과 식물들을 정교하게 묘사한 세밀화, 그리고 악기 모습 조각을 가득 담은 음악의 방을 갖춘 알리카푸 궁전을 둘러보면,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압도해 통치했나’ 싶어지기도 한다.

체헬 소툰 궁전 내부에 있는 사파비 왕조의 궁정을 묘사한 세밀화.
체헬 소툰 궁전 내부에 있는 사파비 왕조의 궁정을 묘사한 세밀화.

제국의 화려함과 권력을 뒷받침한 것은 경제력과 포용성이었다. 이것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 에스파한 시내 남쪽의 아르메니아 기독교도 거주지인 졸파(뉴 졸파)다. 샤 압바스는 17세기 초 15만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북부에서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샤 압바스는 실크무역으로 유명한 아르메니아 상인들을 후원해 큰 수익을 얻었다. 아르메니아 상인들도 이곳 졸파를 거점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실크무역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서쪽으로는 런던, 동쪽으로는 티베트의 라싸, 중국 광저우,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엄격한 이슬람 신정체제에서도, 졸파에서는 강렬한 색채의 기독교 성화들로 가득한 교회들이 역사의 풍파를 견뎌내고 살아남았고 아르메니아인들의 독자적 공동체가 이어지고 있다.

저녁이면 에스파한 시민들은 자얀데강 위의 다리들로 간다. 자얀데강은 이들에게 ‘생명의 강’이다. 한낮의 매서운 더위를 견디고 저녁이 오면, 다리에서 산책하고 다리 아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하지만, 지난달 시오세다리에 갔을 때 강물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한 시민은 “5년 전부터 강물이 사라졌다. 주변에 철강·타일 공장을 너무 많이 세워 공업용수로 써버리는 바람에 강물이 이곳까지 오지 못한다”고 했다. 올해는 더욱 극심한 폭염 속에, 강바닥은 메마른 채 잡초들이 무성하고 곳곳에 나무들까지 자라났다. 이걸 바라보는 이란인들의 마음은 더욱 바짝 타들어 가겠지.

‘세계 최초의 제국’ 아케메네스

에스파한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5~6시간을 달린다. 누런 사막이 조금씩 푸르게 변하면서 꽃과 문학의 도시 시라즈가 나타난다. 이란은 시와 시인의 나라이고, 시라즈는 그 핵심이다. 이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하페즈(하피즈)와 사디의 고향이 시라즈다. 시라즈에 있는 이들의 영묘에서는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는 많은 이란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란인들이 국민시인으로 사랑하는 하페즈(1315~1390 추정)의 영묘에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이란인 가이드의 유창한 중국어 해설을 듣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여성 관광객이 중국어로 하페즈의 시를 낭랑하게 낭송한다. 요즘 이란의 주요 도시와 관광지에서 외국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 합의를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한 뒤, 다른 외국 관광객의 발길은 거의 끊겼다. 대신, 미국에 맞서 이란과 ‘반미 전선’을 강화하는 중국은 이란에 대규모로 관광객을 보내고 있다. 이란도 중국 관광객에게는 비자를 면제해 준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한 중국인 관광객은 “이란과 중국 관계가 좋은 상태여서 주변에서 이란 관광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라즈의 샤헤체러그 모스크 내부.
시라즈의 샤헤체러그 모스크 내부.

이란과 중국 정부의 우호 관계에도, 중국인에 대한 이란인의 감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란에선 외국 관광객이어도 여성이면 히잡(루사리)을 써야 하지만, 소셜미디어에는 중국인 여성 관광객들이 히잡 없이 반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진과 함께 ‘왜 우리는 탄압하면서 중국 관광객들만 봐주냐’는 비판 글이 많이 올라온다.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반중 감정과 이란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을 여행하는 열흘 동안 45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히잡을 쓰고 긴소매에 발목까지 가리는 긴바지를 입어야 했다. 이란 여성들이 한평생 겪는 괴로움을 아주 잠시 체험한 것인데도, 복잡한 심경이 된다. 2006년에 처음 이란에 갔을 때 시민들에게서 ‘우리는 20세기의 첫 혁명과 마지막 혁명을 했다’는 자부심에 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1905년 입헌군주제 혁명과 1979년 이슬람혁명을 말한다.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선거를 통해 개혁파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희망이 계속 있었다. 그런데, 2009년 ‘녹색혁명’ 과정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개혁파 후보가 결국 ‘패배’하고, 핵 문제로 국제적 긴장이 높아지고, 강경보수파 세력이 점점 강해지며,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실망이 깊어졌다. 지난해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그토록 격렬했던 것도 이들의 좌절과 분노, 변화의 요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이란의 복잡한 현실을 잠시 뒤로하고, 페르시아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만나러 페르세폴리스로 향한다.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제국’인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곳이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북아프리카와 그리스, 인도까지 당시 세계의 거의 절반을 통치했다. 다리우스 대제와 크세르크세스 등 황제들은 이곳에서 28개 속국의 사신들과 군대를 불러모아 화려한 의식을 개최했다.

웅장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면 도시 입구에 16m 높이의 ‘만국의 문’이 우뚝 서 있다. 문에 새겨진 사람 얼굴, 소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라마수’가 압도적인 눈길로 방문객을 내려다본다. 3000년 전 제국 곳곳에서 먼 길을 온 사신들은 이 문을 통과하며 황제의 권위에 압도됐을 것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고대 페르시아 세계로 안내한다. 봄을 상징하는 사자가 겨울을 상징하는 소의 엉덩이를 살짝 물고 있다. 페르시아의 새해인 노루즈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가 윤회의 고리를 들고 새를 타고 있는 조로아스터교 문양도 궁궐 입구에 새겨져 있다. 다리우스 대제가 사신들을 맞이했던 아파다나 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메디아, 아르메니아, 그리스, 터키, 스키타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인도 등에서 온 사신들이 각자의 전통 복장을 하고 현지 특산품을 공물로 든 채 황제 알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새긴 부조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세계의 수도’는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가 침략해 불을 지르면서 폐허로 변했다. 알렉산더가 이곳을 이토록 철저하게 파괴한 것은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공격해 불을 질렀던 역사에 대한 복수였다는 해석이 있다. 1971년 레자 팔레비 국왕은 이곳에서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년을 기념하는 호화로운 행사를 열었다. 페르세폴리스 유적 앞에 거대한 텐트를 세워 세계 각국의 정상, 왕족들을 초대했다. 한국에서는 김종필 당시 총리가 참석했다. 고대 제국의 복장을 한 병사들의 열병식과 연회가 열렸다. 그로부터 8년 뒤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는 무너졌다. 권력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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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못하지만 다양한 케밥이

페르세폴리스를 떠나 사막의 도시 야즈드로 간다. 아랍의 정복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 이란인들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다. 사막을 가로질러 정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야즈드는 최후까지 조로아스터교가 살아남은 도시다. 지금도 이곳엔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남아 있다. 야즈드 외곽에 있는 다크메(침묵의 탑)는 조로아스터교 전통에 따라 죽은 이들을 조장(주검을 밖에 내다 놓아 새가 파먹게 하던 장사 절차)하던 시설이다. 꽤 긴 계단을 올라 거대한 탑의 꼭대기에 도착하니, 평평한 조장터 한가운데 큰 구덩이가 있다. 높은 탑 위에 둔 주검을 새들이 뜯어 뼈만 남게 되면, 이 구덩이에 산을 부어 녹인 뒤 분골을 만들어 매장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세상을 이루는 물·불·공기·흙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주검이 신성한 흙을 오염시키지 않게 하려 한 것이다. 야즈드에는 14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신성한 불을 모신,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사원’(어테쉬 베흐람)도 있다.

야즈드 옛도시의 미로처럼 이어진 거리를 헤매는 것은 역사 속을 걷는 것이다. 사막도시에는 목재가 부족해 진흙으로 집을 짓고 외부 침입을 방어하려고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지도록 만든 이 도시는 수백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소중한 물이 증발하지 않도록 고대부터 지하수로와 물 저장 시설들을 발전시켰고, 건물 옥상마다 압력 차이를 이용해 찬 바람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더운 바람을 밖으로 내보내는 ‘바드기르’라는 높은 탑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은 야즈드의 상징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산이 남아 있는 사막도시 야즈드.
조로아스터교의 유산이 남아 있는 사막도시 야즈드.

이란의 역사는 북쪽으로부터 계속 침입해오는 유목민 ‘투란’과의 대결이었다고 한다. 아랍·몽골·터키의 ‘투란’ 정복자들은 말과 칼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지만, 통치할 때는 페르시아 문화와 관료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들의 궁정에서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였다. 이란인들은 그렇게 곡절 많은 역사와 문명의 교차로에서, 풍성한 페르시아 문화를 숙성시켰다. 이란의 요리에도, 카펫에도, 건축에도 그런 만남과 얽힘에서 만들어진 매혹적인 다양함이 있다. 이란인들이 외세의 개입을 경계하면서도 외부의 손님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것도 그런 영향일 것이다.

사프란과 쌀, 생선, 올리브가 곁들여진 이란 남부 지역 요리.
사프란과 쌀, 생선, 올리브가 곁들여진 이란 남부 지역 요리.

이란에서 술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미식가들이라면 페르시아 음식과의 만남을 기대할 만하다. 양·소·닭고기로 만든 다양한 케밥, 신선한 양고기 구이, 화덕에서 구워내는 여러 종류의 난(빵), 쌀밥에는 다양한 채소와 사프란 같은 향신료가 듬뿍 곁들여진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익은 과일은 놀랄 만큼 달콤하면서 저렴하고, 장미수와 다양한 과일, 바질시드 등을 넣어 만드는 전통 음료들은 눈과 입을 행복하게 한다.

숨 막힐 듯한 더위가 가신 밤, 옥상 카페에서 바라보는 야즈드의 진흙 지붕과 바드기르, 모스크의 첨탑들이 끝없이 겹쳐지고 이어지는 풍경은 잊기 어렵다. 에스파한 낙셰자한 광장에 가족·친구들끼리 나와 천을 깔고 준비해온 음식으로 소풍을 시작하고 아이들은 하늘 높이 연을 올려보낸다. 현실의 무게에도 역사는 우리를 끝없이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리라. 페르시아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글·사진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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