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3.95로 전년 같은 달 대비 13.4%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사진은 5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여섯 식구 살림을 꾸리는 50대 주부 정아무개씨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물건을 고르는 손길이 움츠러든다. 물가 상승 폭이 둔화했다지만, 여전히 몇 가지만 골라도 1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탓이다. 정씨는 “최근 뉴스에선 라면값이 내렸다고 떠들썩했는데, 우리 식구가 주로 먹는 제품은 가격이 똑같다. 솔직히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라면 물가 상승 폭이 다른 품목에 견줘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라면 물가 상승률과 전체 물가 상승률 간 격차는 10%포인트 이상 벌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격차가 가장 컸다. 최근 라면 업계가 잇달아 가격 인하에 나섰지만, 인하 품목과 인하율이 낮아 이달에도 가격 상승률 둔화 폭이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6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3.95로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3.4%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월의 14.3% 이후 14년4개월 만에 최고치다. 5월 13.1%보다 되레 상승률이 커지면서 한 달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라면 물가 상승률은 전체 품목의 상승률과 견줘서도 차이가 컸다. 지난달 전체 물가 상승률은 2.7%로 라면과의 격차가 10.7%포인트에 달했다. 이는 2009년 11월(11.0%포인트) 이후 14년5개월 만에 최대다. 전체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라면만은 오히려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이다.
라면 물가 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지난달 국무총리와 부총리, 농림축산식품부까지 나서 “국제 밀 가격 하락에 맞춰 라면값을 인하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농심은 이달 1일부터 신라면 출고가를 4.5% 내렸고, 삼양식품 역시 삼양라면, 짜짜로니 등 12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했다. 오뚜기도 스낵면, 참깨라면 등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0% 내렸으며, 팔도도 일품해물라면, 왕뚜껑봉지면 등 11개 제품 소비자 가격을 평균 5.1% 인하했다.
하지만 이번 달 들어 라면 물가 상승률이 다소 둔화세를 보이더라도 하락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대부분의 업체가 가장 많이 팔리는 주력 제품 가격을 인하 품목에서 제외한 탓이다. 농심은 신라면은 내렸지만,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 가격은 유지했으며, 삼양식품도 불닭볶음면을 인하 품목에서 제외했다. 오뚜기와 팔도도 진라면과 비빔면 등의 가격은 내리지 않았다.
이에 시민단체도 라면 업계의 ‘꼼수 인하’를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앞서 보도자료를 내어 “주요 라면 회사가 지난해 가격을 10~11% 이상 인상했음에도 내릴 때는 4~5%에 그쳤다”며 “지난해 인상률과 제품 종류에 걸맞은 가격 인하를 해 소비자 부담을 확실히 덜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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