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껌의 순기능’ 전략
2000년 자일리톨로 전성기 누린 껌, 스마트폰·온라인 쇼핑 등에 타격
2000년 자일리톨로 전성기 누린 껌, 스마트폰·온라인 쇼핑 등에 타격
롯데제과·롯데중앙연구소가 롯데자이언츠 선수 및 롯데 골프단 선수들을 위해 특별 제작한 껌들. 롯데중앙연구소 제공
롯데자이언츠 전준우 선수 ‘맞춤 껌’이 재료 섞기·재단 과정을 거쳐 나왔다. 이 상태에서 껌이 굳으면 잘라내고 코팅하게 된다. 롯데중앙연구소 제공
롯데자이언츠 김원중 선수의 껌. 김원중 선수의 취향에 따라 스피아민트맛, 중간 강도, 둥근 사각형 모양으로 제작됐다.
‘껌의 효능을 강조하라’…이유는 시장 감소? 정말로 껌을 씹는 게 경기력 향상 등에 도움이 될까? ‘그렇다’는 연구들은 많다. 2012년 3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껌 씹기에 대한 연구를 종합해 “껌 씹기가 기억력 향상, 식욕 억제, 불안감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반복적인 저작(씹기) 활동이 이런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껌을 씹으면 말초신경계를 자극해 졸음방지 효과가 있다거나,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낮춰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전진경 롯데중앙연구소 제과본부장(상무)은 “껌을 씹으면 배고픔을 덜 느낀다거나 근육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며 “껌 씹기의 다양한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국내 대학 연구진과 산학협력 중”이라고 했다. 껌의 기능성을 강조하는 건 국내만의 얘기는 아니다. 껌 제조사들이 모인 일본 추잉껌 협회도 협회 누리집에 껌 씹기의 각종 효능을 나열하며 껌 씹기를 장려하고 있다. 심심할 때 씹는 ‘기호식품’으로 껌이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껌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줄어드는 시장 규모를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국내 껌 시장은 롯데제과·오리온·해태제과가 오랜 시간 과점해왔다. 1970∼80년대 각 사의 간판과 다름없는 롯데 쥬시후레쉬·후레쉬민트·스피아민트(1972년), 해태 은단청(1974년)과 아카시아껌(1976년), 오리온과 롯데의 후라보노(1989년) 등이 잇달아 출시되며 껌 시장 황금기가 열렸다. 2000년대 롯데 자일리톨 열풍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껌 시장은 추세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닐슨코리아와 업계의 분석을 보면, 2010년 3100억원이었던 국내 껌 시장은 점차 줄어들어 지난해 2120억원으로 10년 새 32%가량 쪼그라들었다. _______
젤리·스마트폰·인터넷쇼핑…껌 업계에 타격 업계에서는 젤리 등 대체재 영향이 컸다고 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연도별 식품 생산실적을 보면, 국내 추잉껌 생산 규모는 2014년 2668억원에서 2018년 1237억원으로 53% 넘게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젤리는 897억원→3154억원으로 무려 252%나 증가했다. 껌 대신 씹을 수 있는 젤리로 소비가 이동하면서 껌 생산은 줄고 젤리는 늘어난 것이다. 해당 통계를 인용한 농림축산식품부의 가공식품 세분시장 보고서는 “껌이 턱관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 등 껌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젤리 소비가 증가했다”고 했다. 해태제과 관계자도 “사무실 간식 등으로 젤리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껌 소비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기술 발전도 애꿎은 껌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껌의 주요 구매 패턴인 ‘계산대 근처 매대에서 껌 집기’도 덩달아 줄어든 것이다. <로이터>는 지난달 28일 “식료품을 배달 구매하는 이들이 늘면서 계산대 충동구매 품목인 껌의 매출이 줄었다”며 3월~5월 중순까지 미국 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심심풀이’로 껌을 씹던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시장 축소를 가속했다. 전진경 제과부문장은 “스마트폰 등 놀 거리가 많아지면서 껌 외에도 즐길 거리가 늘었다. 그밖에 출산율 저하와 고령 인구 증가로 껌 주 소비층이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껌 업계는 껌의 식감과 기능을 강조해 남녀노소 ‘껌 씹는 인구’를 늘릴 계획이다. 롯데제과는 지난달 치아에 잘 달라붙지 않아 의치를 가진 사람도 씹을 수 있게 만든 ‘자일리톨 마우스워터’를 출시했고, 오리온도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한 ‘더 자일리톨 소프트’를 내놓았다. 해태제과는 어린이 전용 무설탕 껌 ‘키즈톨’을 선보인 바 있다. 전 부문장은 “껌 씹기는 타액분비를 촉진해 구강 건조를 해소하고 저작 근육을 강화해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데 도움을 준다”며 “껌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씹기 교육을 하고, 고령층에도 껌을 이용한 씹는 연습을 권하는 등 껌 소비층 저변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껌 박사님, 껌을 삼키면 위 벽에 붙나요?
롯데중앙연구소 전진경 상무 문답
지난 16일 롯데중앙연구소에서 만난 전진경 제과부문장(상무)은 ‘껌 박사’로 통한다. 롯데 자일리톨 껌 개발에 참여하는 등 1996년부터 껌 관련 업무에 종사해온 전 상무에게 ‘껌의 오해와 진실’에 관해 물어봤다.
▶ 껌을 씹는 적정 시간이 있나.
“10~20분이 적당하다. 씹는 횟수가 분당 80~100회임을 고려하면, 800~2000번가량 씹게 되는 셈이다. 그래야 저작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 정도 씹어도 맛과 향이 지속하게 계산되어 있다.”
▶ 그 전에 껌의 단물이 빠지는 것 같다.
“껌의 단물은 한 시간 정도 간다. 다만 처음 껌을 입에 넣었을 때 단맛을 크게 느끼다가 점차 맛에 둔감해지기 때문에 단물이 금방 빠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 ‘껌을 삼키면 위장 벽에 붙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아니다. 껌을 삼켜도 아무 문제 없고, 하루 정도 지나면 배출이 된다. 껌은 치클 등 고분자 물질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분해도 안 된다. 몸에 남아있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껌이 머리카락이나 옷에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카락에 붙었을 때는 얼음을 대주면 껌이 딱딱하게 굳어서 쉽게 뗄 수 있게 된다. 옷에 껌이 붙은 건 세탁소에 맡기길 추천한다. 유기용매를 써서 직접 뗄 수도 있긴 하지만, 잘못하면 옷감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세탁소에 가는 게 가장 좋다.”
▶ 껌을 많이 씹으면 턱이 각진다고 한다.
“(턱을 보여주며) 제가 껌을 20년 동안 씹었는데 그렇게 각지지는 않았다(웃음). 예전에 학계와 산학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게, 석 달 간 매일 1시간씩 껌을 씹어도 씹기 전후 아래턱 각의 변화가 없었다.”
▶ 껌 산업도 1년 중 성수기, 비성수기가 있나.
“보통 외부활동이 많은 4월과 5월, 9월이 높다.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여름이나 겨울은 껌의 비성수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껌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많은 맛이나 향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민트와 과일 맛의 인기가 높고, 이를 조합한 과일 민트 맛의 인기가 많다. 과거에는 단순한 맛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복합적인 맛을 선호한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전진경 롯데중앙연구소 제과부문장이 16일 서울 강서구 롯데중앙연구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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