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금융학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꼽힌다. 1999년 금감원 출범 이후 사실상 첫 민간 출신 금감원장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흥식·김기식 원장도 있었으나 이들은 조기 낙마했다. 그동안 모두 모피아(Mofia, 재무부(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경제관료를 지칭) 출신들이 맡던 자리를 개혁 성향 학자가 맡자 금융업계에서도 긴장감이 돌았다.
윤 전 원장은 지난 5월 초까지 3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전임 원장들이 건드리지 못했던 과제들을 서랍에서 꺼내 들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 및 키코 재조사, 종합검사 부활, 특별사법경찰권 부여 등을 놓고 금융위원회와 여러 차례 부딪치기도 했다. 또 2020년 초 국외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를 강단 있게 밀어붙여 큰 파열음을 냈다.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금융업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었다. 이후 불거진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 때 금융회사들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에 적극 나섰는데, 디엘에프 제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윤 전 원장은 금융감독체계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원로 학자다. 금융산업 진흥 정책과 금융감독 정책의 분리, 그리고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은행에서 6년간 근무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재무관리) 박사학위를 받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7년간 가르쳤다. 이후 한국금융연구원에서 5년간 재직한 뒤 한림대·숭실대·서울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재무학회장, 한국금융학회장,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등을 지냈다.
윤 전 원장을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금융학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퇴임 하신 지 벌써 6개월이 다 돼갑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특별히 하는 건 없고 강의요청 들어오면 하고, 신문 기고도 가끔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호랑이 금감원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어떻게 생긴 건가요?
“민주당 박용진 의원께서 어느 자리에선가 호랑이 원장이라고 말씀하신 게 언론에 회자가 됐습니다. 아마도 초창기에 기자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하고 전쟁을 해야 할 거 같다는 말을 한 것과 삼성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문제를 건드린 것을 보고 뭔가 확실하게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제 성격이 호랑이하고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실제 성격은 어떤 편이신가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주변에 잘하려고 하는 성격입니다. 다만, 어떤 부분에서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 그런 강한 성격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키코, 파생결합증권(DLF) 관련 제재가 그런 사례입니다. 디엘에프 제재의 경우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에서 중징계가 올라왔습니다. 당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소비자 보호를 강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그대로 결재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강성 이미지가 굳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디엘에프 제재는 파장이 컸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파장이 커질 줄 모르셨겠죠?
“그렇죠. 처음엔 이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감원이 대단한 줄로 생각해서 곧 정리될 줄 알았지요.(웃음)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걸 안 했으면 잘 몰랐을텐데 그때 알았죠. 개인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실 그런 걸 지적해서 들춰내지 않고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그게 묻혀서 다 썩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냥 부딪쳐서 두드려 맞자 그런 생각으로 했습니다. 다만, 제재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팠겠지요.”
―보수 언론들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나왔지요.
“내가 마치 법과 원칙을 어겨가면서 무리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보수 언론들이 썼습니다. 그런데 내가 법을 어기며 할 사람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당시 금감원의 제재심(제재심의위원회) 진행을 관심있게 보고는 있었지만 사전에 뭔가 주문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검사국 의견입니다. 은행 가서 실제 일어난 일을 검사 후 제재안을 만듭니다. 이걸 법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제재심에서 평가해서 결론을 내면 원장이 결재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사전에 영향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판매자로서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매우 심했고 그래서 제재심에서 중징계가 올라왔는데, 과연 제가 그걸 어떻게 할까가 관건이었지요.”
―당시 제재 결정할 때 여기저기서 압력 같은 게 들어왔나요? 2020년 봄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금감원 감찰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의혹들이 많았습니다.
“압력 같은 게 들어온 건 없었습니다. 다만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이 나온 배경을 저를 포함해 모두가 디엘에프 제재로 생각했습니다. 디엘에프 제재 직후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감찰이 들어와서 들여다본 건 디엘에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헷갈렸는데, 결국은 이 이슈하고 알게 모르게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금융지주에서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감찰이 들어온 거 아니냐는 의심이 많았죠.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서가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디엘에프 관련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일로 투서받을 게 뭐가 있겠나 맘대로 해보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감찰이 들어와서 본 건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두개 은행에 대한 제재를 왜 미루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밑에 물어보니 사실은 그걸 좀더 크게 잡아서 세게 할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던 차에 감찰이 들어온 거죠.”
―감찰 결과는 별게 없었죠.
“임원 1명과 국장 1명을 엄중하게 제재하라고 했지요. 그게 사실상 중징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고요. 그런데 나중에 중징계 얘기는 안 했다고 해서 별일 없이 넘어갔습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금융학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민간 학자 출신으로는 사실상 처음 금감원장에 임명되셨는데, 재임 중에 청와대에서는 좀 힘을 실어줬습니까?
“청와대가 금융개혁에 대해 나름의 생각은 있었던 것 같은데 관료들한테 너무 둘러싸여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제 후임으로 금융위원회 출신 관료를 또 앉힌 것 아니겠습니까? 새 금감원장은 금융감독을 서비스라고 하면서 다시 돌려세우겠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 금감원은 혼란에 빠져있는 듯 보입니다.”
―정은보 신임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는 취지로 말씀 하셨지요.
“금융회사가 소비자한테 피해를 입혀도 그래 잘했다 지원하겠다고 할 건가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참호를 구축(이사회를 우호적 인사들로 구성하는 것을 뜻함)해서 몇 연임씩 하면서도, 그것도 잘하면 또 모르겠지만 얼마 전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고 그러면서 큰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를 잘했다고 계속 지원만 하는 게 옳을까요? 이런 것들을 올바르게 이끌 책임이 금감원장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신임 원장만 나무랄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금융위원회와 사전조율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신임 원장이 관료 출신인데, 관료들끼리 공유하는 가치 유산, 모피아 레거시라고 할까요, 뭐 그런 게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모피아 레거시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모피아 그룹에 전해 내려오는 정신적·실질적 ‘가치 유산’으로 이해되는데, 결국 자리가 아닐까요. 좀 나쁘게 말하면 선후배 간 자리 챙겨주기, 전관예우 등 금융 분야 관료주의 폐해를 통칭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관행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면 거기에 못 끼게 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형화된 틀로 갈 수밖에 없도록 서로가 서로를 옭죄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 금융권에 대해서는 혁신이니 창의니 요구하면 뭐 합니까.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요. 혁신을 일으키려면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규제를 그냥 풀면 문제가 생기니까 감독을 강화하여 이들을 제대로 이끌어줘야 합니다. 감독 강화가 전제가 돼야 규제완화도 하고,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서 창의성도 살리고 혁신도 가능해지겠지요. 그런데 금융감독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규제만 풀면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감독의 강화가 필요한 이유인데, 금융위는 금감원 확대를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금융위가 2015년 자본시장, 모험자본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풀었는데, 그럴려면 기반이 갖춰져야 가능한데 이런 건 무시했죠.
“그렇죠. 사모펀드 규제완화 준비할 때도 티에프(TF) 회의 하는데 감독 강화 주장하는 금감원 직원들은 빠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놓고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은 슬쩍 빠져나가고 금감원이 집행을 잘 못해서 문제가 커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경(keleidoscope)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는 꽃, 벌과 나비, 새와 나무, 풀 등의 문양이 차례로 들어 있는데, 앞에서는 이게 섞여서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금융을 보는 시각이 이렇다고 생각됩니다. 금융위가 뒤에서 교통정리 잘못하고 있는데, 국민들 눈엔 금감원 실수만 보이는 것이지요.”
―모피아들은 낙하산으로 공공기관장이니 금융협회 임원, 금융회사 경영진으로 가서 금융위 후배들에게 영향력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피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우려가 많이 되는 문제입니다. 우리 금융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죠. 모피아들의 독점적 인사 장악을 막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입니다. 금융산업 정책을 기획재정부로 가져가고 감독정책과 감독집행 기구를 하나로 합해 통합감독기구를 만드는 겁니다. 이 통합감독기구를 민간 기구로 만들고 감독전문가들의 정년을 보장하되 낙하산은 금지하는 방안입니다. 또 하나는 금융위원장에 민간인을 앉히는 방안입니다. 다만 인선을 잘 해야 할 텐데 전문성을 지니면서 금융권의 이해에 중립적이고 사명감을 지닌 인사라면 낙하산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 외에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같이 로비스트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지닙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금융학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정부 교체기를 맞아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는 민형배 의원의 지적에 대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자꾸 바꾸기보다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체제와 관행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정은보 금감원장도 “미세조정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답변했습니다. 현 체재를 유지하거나 미세조정하는 수준으로 현재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렵다고 봅니다. 감독체계 문제와 관련해서 금융위는 늘 ‘정답이 없으니 바꾸기보다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고쳐나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정답이 없다는 것이 여러 답이 있다는 뜻이라면 맞습니다. 세계적으로 통합형, 쌍봉형, 소봉형, 기관별, 기능별 등등 다양한 모형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주어진 특정한 상황에서 답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각국이 상황은 다르나 자기 상황에 맞추어서 하나의 답을 만들고 그걸 부단히 개선해나갑니다. 사고가 터지면 취약한 부분을 바꿔나갑니다.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모두 그렇게 합니다. 금융사고가 터지는데 현 체제 유지가 최선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습니다.
유기적 협력이나 미세조정하겠다는 건, 조정해서 합치시킨다는 겁니다. 금융위가 상위 기구니까 금융위 목표에 금감원이 노력해서 합치하도록 시키겠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행정편의주의고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겠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대형 금융사고가 벌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우리나라 감독체계는 세계적으로도 기형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보호처 강화에서 더 나아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두 조직으로 분리하는 쌍봉형을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쌍봉형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여러 학자들과 작업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그 이슈 전에 금융산업 진흥정책과 감독정책의 관계 정립이 먼저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쌍봉형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금융산업 진흥 정책이라는 게 선진국 예를 보면 앞으로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금융을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금융업계에서 또는 시장에서 감독의 기준에 맞추어 발전해나가면 되는 것이지, 굳이 정부가 끌고 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포용금융·정책금융 등은 계속 정부가 챙겨야 할 텐데 기획재정부로 옮기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남는 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입니다. 현재 이들 관련 집행 업무는 금감원이 모두 처리하는데, 이걸 두개로 갈라서 쌍봉형으로 만드는 방안은 글로벌 금융의 발전 추세에 비추어 또 효율 극대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우리은행의 디엘에프 상품 선정과 판매 과정에서 심각하고도 조직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내용을 어떻게 보십니까?
“부당하다고 봅니다. 이 판결은 결국 소비자 보호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 재판에서 금감원이 지면 당분간 소비자 보호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이 이 점을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국민의 신뢰가 쌓이고 그걸 토대로 금융도 발전하는 겁니다. 이 재판에서 지면 생각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지난 3년간 어떤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여건 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록 완성은 못했지만 시작은 했다고 봅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제가 총대를 메고 밀어붙인다는 각오로 임했지만 결과적으로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어떻게 끝까지 가겠습니까. 그 정도로 저는 만족합니다.”
―재임 중에 이루려고 하신 게 결국은 소비자 보호 강화였던 거지요?
“소비자 보호가 하나고, 그 다음에 체계상으로는 금감원 독립을 위해 한 게 없지만, 소프트웨어 면에서 독립을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후자는 밖에서 잘 안 보이겠지만요. 언론에선 자꾸 금융위와 말썽만 일으켰다고 쓰지만 뭐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랑은 아니나 학계 그리고 일부 업계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거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계부채 문제는 현재 우리 경제의 최대 잠재위협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조기 시행 등을 골자로 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내놓았습니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저는 가계부채 문제는 시스템 리스크와 관련되므로 일찍부터 상환 능력 중심의 디에스아르 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가계부채 급증은 두가지 우려를 하게 합니다. 하나는 집값 폭락이나 해외 충격 영향으로 인한 금융위기 리스크입니다. 또 하나는 부채 부담으로 수요가 억제되는 것입니다. 첫번째 것은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집값이 쉽게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고, 설혹 떨어져도 2~3년 정도 대응기간이 있어 그 사이에 정비를 하면 된다고 봅니다. 주택담보대출은 시스템 리스크이기 때문에 디에스아르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전세대출도 일시적으로는 제외할 수 있지만 시스템 리스크와 관련되니까 포함시키는 게 맞습니다. 신용대출도 ‘빚투’와 관련된 것은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하므로 디에스아르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다만, 자영업자 일반신용대출이나 생계형 대출은 시스템 리스크가 그리 크지 않고, 또 기회의 사다리 제공이라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좀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을 구제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셨지요. 그런데 원장님 퇴임하시니 다시 지지부진해 지는 것 같습니다.
“피해 중소기업인들이 굉장히 한에 맺혀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하고 넘어가는 게 우리 금융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대법원 판결에서도 인정한 불완전판매 관련 분쟁조정 권고안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은행이 이를 받아줬지요. 나머지는 은행협의체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는데 씨티·신한·대구은행이 성의를 보였고 그 후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야무야로 가는 거 아닌가 걱정입니다. 당국에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넘어야 한국 금융이 신뢰를 회복하고 선진화될 수 있고 보는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