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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국가 채무비율, 마법의 숫자는 없지만”…“한국은 재정 더 썼어야”

등록 2022-01-24 04:59수정 2022-01-24 09:54

[인터뷰] 배리 아이컨그린 미 버클리대 교수
“잠재성장률-금리 변화 보며 채무 지속성 살펴야”
“채무 감축 서두를 단계 아냐”
“지속성 부족한 공약 남발 후보 지지 말아야”
미 버클리대 누리집 갈무리
미 버클리대 누리집 갈무리

코로나19 대응 수준은 재정 지출의 규모와 속도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정치권에선 최소 두 배는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동시에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국내외 금융·경제 여건도 급변 중인 터라 재정 지출의 적정 수준은 갈수록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한겨레>는 국제금융계의 석학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국가채무를 위한 변호>(In Defense of Public Debt)에서 전쟁이나 전염병 등 위기에서 국가채무가 구세주 역할을 한 동시에 위기에서 벗어난 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다시 위험에 빠지는 역사적 사례를 살피기도 했다. 고려대 신관호 교수(경제학)와 함께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를 조망한 ‘기적에서 성숙으로’(2013)을 펴낸 바 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두 차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 수준에 대해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재정 여력이 많은 나라로 (코로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낮아지는 만큼 다른 선진국보다는 더 많은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아이컨그린 교수는 학계 일부에서 거론하는 적정 채무비율에 대해 “마법의 수치는 없다”고 단언하며 “지속가능한 채무 수준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성장률과 실질금리 변화 등에 따라 국가별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채무를 서둘러 줄일 필요는 없다”란 조언을 남겼다. 재정 확장의 강도 조절은 할 수 있으나 채무를 감축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또 그는 “유권자들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3월 미국의 재정 지출은 과도…현재 인플레이션은 공급 차질 때문”

―코로나19로 인해 각 국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국가채무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위기에 대한 각 나라의 재정 대응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거나 피할 수 있었던 대응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난해 3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부부 소득 연 15만달러 이하인 모든 가정에게 소득을 지원한 건 과도했다. ‘우물에 독을 타는 오류’(poisoning the well)였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더 지원하는 게 바람직했다. 그런 과도한 지원이 없었다면 이후 2조달러 규모의 사회복지예산(Build Back Better·BBB) 법안이 좌초 위기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3월 바이든 행정부는 1인당 1400달러를 지원하는 1조9천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조 맨친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온건파는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 대상 부부 소득 기준(연 20만달러)은 물론 실업급여도 400달러에서 300달러로 낮출 것을 요구하며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결국 일부 수정 뒤 법안은 통과됐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내놓은 사회복지예산 법안은 맨친 의원 등이 국가채무 증가와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반대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출과 관련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두고 전문가들간 논쟁이 있었다. 당신 의견은?

“지난해 3월 미국의 경기 부양책에 대해 로렌스 서머스 교수가 과도한 수요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걱정한 바 있다. 당시 나는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차질 영향이 크다. 재정 정책과는 무관하다.” (지난해 초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재무장관)은 정부의 재정 과도한 재정 지출에 대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며 반대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폴 크루그만 뉴욕시립대 교수는 “물가 오르더라도 일시적이며,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며 재정 지출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이 세 명은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 재정 지출을 주장한 대표 학자다.)

―국가채무 급증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배웠듯이 너무 이른 재정 긴축은 경기침체 위험을 낳는다. 대신 서서히 재정을 안정화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점진적으로 흑자 예산으로 이동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디플레이션을 피하거나 적당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면서도 재정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지난해 펴낸 책의 결론이기도 하다. 재정 안정화는 향후 새로운 전염병과 기후 변화, 지정학적 사건 등을 대비해 필요하다.” (금융위기 충격이 일시 회복된 지난 2010~2013년께 재정 긴축으로 돌아섰다 재침체 빠진 바 있다.)

“한국은 재정 여력을 남긴 나라… 더 썼어야”

―한국의 재정 운용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한국은 코로나19 위기에 재정 지출을 하면서도 재정 여력을 남긴 소수의 나라 가운데 하나다. 재정을 좀 더 지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정부의 재정 지출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로 민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했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국가채무비율(일반정부 기준)은 47.9%로 전년 42.1%에서 5.8%포인트 상승한 반면 민간부채는 271.6%로 19.1%포인트가 올랐다. 반면 주요20개국(G20)의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10개국 평균은 국가채무비율은 99.1%에서 111.5%로 12.4%포인트가, 민간부채는 193.1%에서 211.5%로 18.4%포인트 늘었다.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는 국가채무가 민간부채보다 더 많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다만 2010년 민간부채의 급증은 부족한 재정 지출 탓보다 활황세를 보인 부동산 시장과 더 관련이 깊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올려 국가채무 부담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의 필요성은 계속되고 있다.

“기준금리가 계속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부채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한 것은 실질금리(물가 상승을 반영한 금리)다.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금리보다 더 빨라 실질 금리는 사실상 하락하고 있다. 조만간 이 관계가 역전되고, 실질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부채 운용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질 금리가 더디게 움직여, 정부는 임박한 부채 부담 상승에 대비할 시간이 있다. 특히 국고채의 이자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장기채 발행은 신중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 확대와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지출 등을 고려해 증세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은 경제 성장에 발맞춰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 역사는 사회안전망 강화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했다. 이 부담을 누구에게 지울지는 한국 사회가 결정할 일이다.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한 증세를 고소득자와 대기업에게 지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 이같은 정책에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20년 말부터 재정준칙 수립에 노력 중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비율이 낮다. 다만 재정준칙 유무와 상관없이 새로운 전염병이나 금융 위기, 재난 등을 대비해 재정 여력을 회복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급하지 않다.” (기재부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0%, 통합재정수지는 -3%가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며 2020년에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당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며, 야당은 재정준칙 기준이 헐겁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때문에 관련 개정안은 2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한국은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주요 후보들이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에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국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임을 말해준다. 세금을 줄이고 지출을 늘린다는 공약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가들이 선거 전에 늘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정치 행위를 ‘정치적 경기 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고 칭한다. 유권자들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에게 보상하지 않아야 한다.”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는 마법의 수치는 없어… 각국 상황 따라 달라”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2021년 51.3%에서 2026년 66.7%로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100%가 넘는 선진국 평균과는 거리가 있지만, 채무 증가 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다. 한국의 적정 채무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마법의 숫자’는 없다. 경제성장이 빠를수록 부채의 지속 가능성은 커진다. 중기적으로 성장이 더뎌질 수 있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보다는 낮게 국가채무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국가채무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과거 일부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의 90%를 넘는 국가채무는 지속 불가능하다며 마치 ‘마법의 수치’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연구 결과는 이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국가채무가 지속 가능한지는 당장은 물론 미래의 경제성장률, 실질금리, 재정 수지 등에 따라 결정된다. 이떄문에 국제통화기금은 개별 국가의 상황에 맞춰 ‘채무 지속 가능성 분석’을 하고 있다. 이는 백화점에서 기성복을 사는 것보다 재단사가 만들어주는 맞춤 정장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같다.” (2010년 미국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동료 카르면 라인하트 교수와 함께 <이번엔 다르다>는 책을 내어 정부와 공공기관 등의 부채비율이 90%를 넘어설 때 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장에 신뢰성이 크게 흔들렸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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