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관료 출신으로는 드물게 지난해 3월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등 학자 출신의 뒤를 이어 현 정부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실장이다.
이 실장은 행시 32회로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경제정책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을 맡은 뒤 2018년 12월 기재부 1차관으로 승진해 청와대를 나갔다가, 6개월 만에 다시 경제수석으로 청와대에 돌아왔다. 이력이 말해주듯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일각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폭탄론’ 비판에 대해 자산 여유 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신분에 상응하는 책임) 실천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등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을 강하게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 분야 최고위 참모답게 주요 현안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 실장은 현 정부 임기를 마치는 이 시점에 경제 분야 성과에 대해 “있는 그대로 봐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에 대해 거시경제에서부터 기업경쟁력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국내 일부 비판자들은 1부터 10까지 모두 낙제점이라며 아무 성과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그는 “비판을 할 수는 있으나 지나쳐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 실장을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에서 만났다. 인터뷰 뒤에 변화가 있었던 추가경정예산 등 일부 현안은 22일 전자우편을 통해 추가 답변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 그리고 가장 아쉬운 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크게 보면 성과는 두 가지입니다. 국제경제 질서의 변화와 연속된 위기를 잘 극복하고 미래 변화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정부 출범 때부터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2017년 북핵 위기,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주의가 있었고, 그리고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위기와 공급망 충격까지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톱10 국가로 올라서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승격했습니다. 지난해 1인당 소득이 3만5천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혁신능력과 문화 등 소프트파워에서도 세계에서 선도적 위치를 갖게 됐습니다. 분야별로는 유니콘 기업이 3개에서 18개로 늘어나는 등 제2벤처 붐이 일었고 생존의 기로에 섰던 조선업과 해운업의 부활을 이끌었습니다. 방산도 순수출국이 되었고요. 위기 속에서도 선진국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을 이루었고 동시에 지난 4년간 소득5분위 배율, 지니계수 등 분배지표의 개선을 이뤘습니다. 미래 대비 측면에서는 한국판 뉴딜을 통해 디지털·그린이라는 큰 구조전환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안전망과 사람투자에 나섰습니다.
아쉬운 점은 무엇보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조기에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설사 코로나의 영향, 그리고 전세계적인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가 저변의 원인이고 모든 나라가 같이 겪었던 문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최근 부동산시장 안정이 정착돼가고 있고 계획된 공급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번 대선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이 대표적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가을, 초겨울부터 시장 안정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라서 많이 아쉽죠. 정책을 좀 더 잘했으면 시장 안정이 조기에 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점은 남지만 결과적으로 2~3년간 굉장히 어려웠으니까 그 부분을 실패가 아니다라고 강변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죠. 그런데 부동산 시장 불안정이라는 게 한국만 생긴 건 아니거든요. 전세계가 겪었고 그 배경에는 코로나가 닥치니까 유동성을 확 풀었고 금리는 최저금리로 낮춰 놓은 상태에서 재정도 많이 확대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띄워진 거예요. 거기다 추격 매수도 일어나고 시장 심리가 더 오를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가격이 올라갔는데 정부가 제어를 못 한 거란 말이죠. 그런 점에서는 정책적으로 효과를 다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공급 대책이 뒤늦게 나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정부가 열심히 해서 205만호 공급 대책을 마련해 놨기 때문에 다음 정부에서 그게 본격적으로 실현이 될 것입니다. 도심에서도 찾아보면 공급을 많이 늘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개념으로 2·4 대책을 했어요. 그런 노력을 좀 더 일찍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많은 상실감을 초래한 데 대해 죄송스럽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동산에 대한 입장에는 여러 층이 있어요. 아주 비싼 주택을 여러 채 가진 분들도 있고,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에 해당되는 분들도 있고, 집이 없는 분들도 40%나 돼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산의 가격 상승으로 격차가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안정이 깨지거든요. 집 안 가진 분들은 큰 상실감을 겪게 되잖아요. 그걸 정부가 두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상당히 강한 정책도 했던 것입니다.”
―코로나 국면에서 주택가격 상승은 글로벌 현상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주요국이 우리보다 더 많이 올랐죠.
“많이 올랐어요. 왜냐하면 거기도 금융, 그러니까 통화나 유동성을 엄청 풀었거든요. 그래서 그 나라들도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보다는 좀 덜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땅덩어리도 넓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커서 부동산에 대한 민감도가 좀 덜해요. 한국은 금융자산이 아니라 부동산이 가계 순자산의 70%가 넘어요. 전세 제도라든지 정형화된 아파트 거래 같은 한국만의 특징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외국은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낮고 또 땅이 넓어 빈 땅이 많으니까 공급을 하려고 하면 훨씬 빠르게 할 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
―최근 주택가격이 조정 양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대선 기간에 여러 공약들이 나오면서 일부 지역에서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긴 합니다. 올해 집값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눈여겨보는 지표는 실거래가격지수입니다. 이건 실제로 거래된 것만 보는 거예요. 지난해 11월부터는 사실상 주택 시장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12월에도 마이너스 폭이 꽤 커졌고요. 또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거의 10년 내 최저로 떨어졌어요. 그만큼 시장에 대한 기대나 심리가 바뀌었고 수요가 뒤따라가지 않는다는 얘기거든요. 지금 가격에 수요가 뒤따라가지 않으니까 거래가 위축되는 현상이라서 좀 추가적인 시장의 하향 조정은 있을 거라고 예상을 합니다.
그리고 부동산 불로소득 같은 경우에는 차기 정부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차기 정부가 최소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깨뜨리는 쪽으로 정책 선택을 하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굉장한 국민적 저항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근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갈라치기를 해서 집 없는 서민들한테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인데,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참 코멘트 하기가 어려운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시장 불안정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잖아요. 비판도 많이 받았고, 정치적인 부담도 많이 졌고요. 그런데 그것을 정부가 일부러 기획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니까요.”
―가계부채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관리방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가긴 했으나 우리 경제의 잠재적인 최대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혹시 부실 요인이 있을지 부처를 통해서 계속 보고를 받아보는데 아직 특별한 기미는 없어요. 그리고 소상공인들도 상당 부분 이자 상환을 하고 있어요. 금융기관들도 충당금을 더 쌓고 자본 여력을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정착이 되는 과정이니까 전체적으로는 연착륙이 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은 별도의 관리가 있어야 됩니다. 어려워진 차주들한테는 맞춤형 상환 계획을 짜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업을 계속 영위해갈 수 있는 분들은 시간만 좀 주면 갚아나갈 수 있거든요. 일시 상환 대신 2년이나 3년에 나눠서 갚는 구조를 짜주거나, 상환 일시를 일정 기간 유예해 주는 식으로요. 이러한 장치들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계획은 언제쯤 발표할 예정입니까?
“이걸 일괄 연장을 할 것이냐, 갚을 수 있는 사람은 갚게 하면서 나머지만 연장할 것이냐 하는 구조를 짜야 되는데, 일반 은행들도 이런 구조가 갖는 비용과 편익에 대해서 검토를 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정부 원칙은 어려워진 소상공인한테 당장 갚으라고 그러면 현실이 안 맞는다는 거고요. 오미크론 방역 상황이 주요국 사례를 보면 막바지로 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까지 좀 봐서 장기적으로 상환을 해나갈 수 있도록 개별 프로그램을 짜는 걸 금융권과 금융위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될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자산 격차는 더 심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자산 불평등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신지, 그리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앞으로 정책적 과제를 말씀해 주십시요.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은 말 그대로 한강의 기적입니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해서 30년 동안 연 10% 가까운 성장을 합니다. 이렇게 오랜기간 고성장한 첫 번째 요인 중에 하나가 광복 후의 농지개혁이에요. 그 당시 가장 중요한 자산을 나눠 출발을 비슷하게 해놓은 거예요. 거기에다가 보편 교육을 빨리 했습니다. 식구 중 일부가 대학을 가서 식구들 부양을 하고, 아니면 누나가 희생을 해서 남동생을 대학을 보내거나 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를 통한 소득을 늘려서 중산층을 형성했고, 이게 고도 성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포용적인 제도와 정책입니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대(MIT) 교수가 저서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인 제도와 정책을 가진 나라가 성공한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착취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는 실패하고요. 여기서 착취적이라는 말은 기회나 성장의 과실을 어떤 특정한 계층이나 부류가 다 가져가는 것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남미가 거꾸러진 게 이런 이유 때문이거든요. 특정한 패밀리나 계층이 다 가져가 버리는데 국민이 뭘 하겠어요. 의욕이 안 나지. 그런 점에서 자산격차 문제는 결코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부동산시장 안정으로 불로소득 기회를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투기 등 시장교란 행위를 차단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세번째로, 자산형성 기회를 널리 가질 수 있도록 무주택자 내집마련 기회와 최근 청년희망적금 같은 청년층 재산형성 저축 제도를 확대하는 겁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래 세대가 혁신과 직업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신산업 분야 인재 양성과 공교육의 질 제고가 필요합니다. 벤처 창업을 해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하는 그런 사회를 계속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인적자본과 기술에 기반해 우리나라가 계속 성공하지, 부동산 사서 두 배 올랐다고 좋아하고 그래 가지고는 미래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그리고 여행업 등 일부 대면 업종입니다. 우리 정부도 보상을 하고 있으나 다른 주요국에 견줘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정을 통한 직접 지원을 더 확대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접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지금껏 겪어온 그 어려움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만, 저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지나온 2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부로서도 여러 제약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왔다고 봅니다. 올 초까지 총 7차례 추경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소상공인 직접 지원액이 한 18조원 정도 되고 이번 추경으로 10조원가량이 방역지원금으로 추가 지급됩니다.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도 지역화폐 형태로 25조원 정도가 지급되었죠. 또 하나는 세계 최초로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보상법을 제도화했어요. 이게 분기마다 손해를 산정해서 해주게 되어 있는데 지난해 3분기분 2조4천억원이 나갔거든요. 손실보상금은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중복해서 나가는 겁니다. 식당을 운영한다면 방역지원금을 300만원 받고, 그리고 분기마다 매출 계산을 해서 손실 보상이 또 나오는 구조입니다. 정부로서 아무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소상공인 입장에서 절대 충분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대출을 받아 사업이나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습니다.
“손실보상금을 지원할 때 조사를 해보면 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승자는 있어요. 코로나가 심한 시기에도 어떨 때는 3분의 1, 어떨 때는 40% 정도가 매출이 늘어 있어요. 이 분들은 나름 장사를 잘 하신 거예요. 그런데 업종마다 달라요. 전체적으로 어려운 데도 있고 전체적으로 괜찮은 데도 있고요. 어쨌든 정부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대출 지원도 많이 했습니다. 은행에 가서 빌리면 신용도에 따라서 연 7%, 10% 이자로 빌려야 하는데 1.5%, 2% 정도로 이자를 경감해 주었고, 이걸 재정에서 뒷받침했습니다.”
―정부가 코로나 피해 대책으로 금융 지원을 주요 수단을 동원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한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정으로 지원할 걸 금융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채무 과다 상태에 빠진 자영업자 등 금융 취약계층에 채무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신용 대사면 공약도 내걸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만기 연장이나 상환 유예 조치가 6개월 단위로 2년째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부분을 유연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 취약 차주에 대해서는 프리워크아웃 같은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에 있어 기본적으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는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 사면이나 일괄 탕감 같은 것은, 실은 취하기에 많은 제약이 있는 조치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 급여보호프로그램(PPP·피피피) 같은 사실상의 대출금 탕감 제도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한국형 피피피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우리도 도입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피피피는 사실상 재정 지원이죠. 대출금을 임금에 쓰거나 고용을 유지하거나 이렇게 하면 그 부분만큼 안 갚아도 되는 방식이니까요. 그런 장치들은 우리도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나간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이 갖고 있지 않은 손실보상 제도라는 걸 갖고 있잖아요. 또 지난 연말에 고안한 것 중에 하나는 미국의 피피피와 똑같지는 않지만 먼저 500만원을 선지급하고, 나중에 산정하는 방식으로요. 나중에 보상액이 300만원으로 산정되면 그걸 제하고 200만원은 초저금리 대출로 갚게 하는 겁니다. 약간 변형된 형태로 한국에서도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지원을 해줄 때 코로나 이전 대비 매출 감소액을 기준으로 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손실보상 제도를 도입했지만 보상 산식이 매출 감소액에다가 매출 대비 인건비·임대료 비중 등을 곱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까 매출 감소율이 훨씬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손실 보상액수가 적게 나오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도입을 해서 운영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한 분기를 운영을 해봤잖아요. 하한액 10만원이 너무 적으니 최소한 50만원을 줘야 되지 않느냐 해서 올렸고, 손실보상 보정률도 80%에서 90%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손실보상은 개념상 재난지원금과는 별도의 추가적인 법적 보상인 만큼 실제 피해 규모인 영업손실에 초점을 두면서도 인건비와 임대료 같은 고정비도 함께 고려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전면적인 영업 봉쇄는 하지 않았던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구요. 아직 제도 운영 초기인 만큼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우리의 재정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선을 넘으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다만,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85% 수준까지도 괜찮을 것으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의 재정여력을 너무 보수적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나라는 60%에서도 재정 위기가 오고 일본 같은 나라는 250%가 돼도 재정 위기가 안 오잖아요. 그래서 나라마다 달리 봐야 되는데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재정보수주의적인 관점이 강합니다. 외환위기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혼이 났던 그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거예요. 또 고령화로 차츰 재정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미리 대비를 해놔야 되지 않느냐 그런 관점이 있습니다.
최근 2년간 추경을 7차례 하는 과정, 그리고 본예산을 계속 짜는 과정에서 지켜보면 굉장히 큰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재정보수주의와 재정적극주의 이 둘이 어떨 때 보면 극단적인 주장을 합니다. 한쪽은 수입 내에서 지출을 해라 이렇게까지 주장을 해요. 아무 빚을 내지 말라는 것이죠. 다른 한쪽은 괜찮다,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양쪽의 어딘가에서 정부는 균형을 잡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60%가 맞냐, 85%는 어떠냐 하는 거는 제가 볼 때는 큰 의미 없는 주장이에요. 그건 일률적으로 볼 수도 없고 괜찮은 정도라는 것은 보통 시장에서 한국이 부채를 상환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를 믿어 주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신뢰가 흔들리면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려 버려요. 우리 같은 상황에서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면 대외 금리가 올라가고 외자가 유출돼서 위기를 겪었던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그건 막아야 되거든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것은 사실입니다. 국가채부 비율이 낮고 대응자산을 가진 금융성 채무가 전체 채무 중 40% 가까이 되고, 순대외자산도 550조 규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어떤 것이었냐 하면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관리하면서 그래도 위기 때는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글로벌 흐름을 보면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정부 역할이 점점 더 확장되는 쪽으로 진행되어 온 건 사실입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당선되면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해 5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규모의 재원을 현실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재정 트릴레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는 건데요. 복지(재정지출)를 늘리려면 결국 국가부채를 늘리거나 세금을 늘려야 된다는 겁니다. 국가부채도 안 늘리고 세금도 안 늘리고 복지와 같은 항구적인 지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건 도깨비방망이가 있어야 되는 것이니까요. 국가부채를 늘리거나 세금을 늘린다고 하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지출을 조정해가지고 하겠다는 공약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 역시 한계가 분명히 있죠. 트릴레마 개념으로 보면 아무 대가 없이 어디선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대규모 혜택을 주겠다는 건 성립이 안 됩니다.
그래서 대규모 공약을 낼 때는 과연 거기에 들어가는 재원을 어디서 조달한다는 것인지 따져보고 판단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 없는 주장이 돼버리니까요. 다만 지금 선거 상황에서 제가 개별 공약의 재원 조달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가 예산실장 출신이어서 그런지 의원들이 먼저 지역구 예산에서 10% 정도 지출 구조조정해서 30조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내놨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래도 책임 있는 주장에 가깝죠.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재원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김동연 전 부총리가 의원들에게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부터 깎읍시다라고 말씀하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한미공동성명에서 공급망과 첨단기술 관련해 상호 투자와 공동 연구개발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G2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미국 쪽으로 기우는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앞으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야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경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인구 5천만의 좁은 내수예요. 그래서 진취적으로 대외 진출을 하고 생존을 걸고 혁신을 해온 겁니다. 이 국내 시장을 놓고는 우리 기업들이 사업 설계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미국은 우리와 유일한 군사동맹입니다.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국가 운영이 잘 안 돼요. 또 상당히 많은 하이테크의 원천 기술이 미국에서 옵니다. 반면에 우리 수출의 3분의 1이 홍콩을 포함한 중국으로 가요. 시장을 크게 의존하고 있어요. 그리고 공급망도 상당히 의존하고 있고요. 그래서 조화와 균형이 필수적인 영역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 중 어느 편에 자꾸 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국가를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갈 수가 없어요. 이걸 선택의 문제로 국한해서 보면 국익에 부합을 안 하는 거고, 너무 성급해요. 제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은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민주주의·환경·공정한 경쟁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분명하게 지지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이런 기준이 국익에 제일 부합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