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여행을 할 때 달러는 대부분 지역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70년 전만 해도 이러한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가 아닌 영국 파운드였다. 세계 패권 경쟁에 따라 기축통화도 달라진 것이다.
최초 기축통화 역할을 한 화폐는 영국 파운드다. 파운드는 1717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도입한 이후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은 1694년 설립된 영국은행이 중앙은행 기능을 수행하는 등 금융시장이 발달해 있었다. 또한 이 시기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정치·군사력으로도 초강대국 위치에 있었다. 이에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화폐 주조 책임자를 맡고 있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파운드 가격을 금 1온스당 4.25파운드로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설계하게 된다. 그 결과 파운드는 안정적인 화폐로 인정받으면서 1860~1914년 동안 세계 교역 결제 통화의 60%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영국을 중심으로 한 금본위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흔들리게 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세계 대전 전쟁 비용과 이후 복구를 위해 미국에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순채권국이 된 미국은 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은 금이 부족해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패권은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영국은 두 차례의 전쟁으로 정치·경제적 타격이 심해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줘야 했다. 영국 파운드가 누리던 기축통화 지위도 미국 달러로 이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 브레튼우즈에 모인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금 1온스당 35달러로 하는 고정 환율제도를 채택했다.
1971년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를 금과 일정 비율로 교환하는 금태환을 정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국제 거래에서 위상이 높아진 달러는 사실상 기축통화 지위를 이어갔다. 금태환 정지 이후 각국은 오히려 달러 보유액을 늘렸으며, 1971년 말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5%였던 달러 비중은 1977년 말 79%까지 치솟았다. 이후 달러는 현재까지 70년째 대표 국제 통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