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10년 만에 4%대로 치솟았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회센터. 연합뉴스
소비자물가가 10년 3개월 만에 4%를 웃돈 상승률을 보인 건 지난해부터 시작한 공급망 차질과 곡물 등 원자재값 상승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공급 불안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며 상품과 서비스 요금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4%대의 높은 물가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터라 소득 수준이 낮은 가계나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의 물가발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서비스 품목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현상이 뚜렷하다. 구체적으로 휘발유(27.4%), 경유(37.9%), 자동차용 엘피지(LPG·20.4%) 등 석유류 제품 가격이 급등했다. 이에 석유류를 포함한 공업제품의 물가 기여도가 2.38%포인트에 이르렀다. 전체 물가상승(4.1%)의 절반 이상이 공업제품 가격 급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민감한 빵이 9.0% 뛰는 등 가공식품 상승률(6.4%)도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
외식 물가(6.6%)를 비롯한 개인서비스 물가도 4.4%나 뛰었다. 공급 충격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이 품목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서비스 물가는 통상 수요가 강해질 때 오르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재의 물가 상승을 유가 급등 등 공급 요인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등에 따라 국내 소비가 점차 회복되는 흐름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그동안 동결해온 전기요금과 주택용·일반용 가스요금을 이달 들어 인상했으며 추가 인상 가능성도 큰 터라 향후 전체 물가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날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방안 등을 내놓은 건 그만큼 물가 상승세가 심상찮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연 뒤 낸 자료에서 “물가 경로의 상방리스크가 더욱 커졌다”고 평가하며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당분간 (상승률이) 4%대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며 연간으로는 지난 2월 전망치(3.1%)를 크게 상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 고공행진이 앞으로 지속한다는 예측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0년여 만에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식당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런 물가 흐름은 정책 대응을 고차방정식으로 내몬다. 우선 높은 물가는 당장 소비자의 구매력에 타격을 준다. 임금이 올라도 실질 소득(명목소득에서 물가 변동분을 제외한 소득)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전반적인 임금에 영향을 주는 최저임금을 얼마만큼 올릴지부터 정부로선 쉽지 않은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인상 수준(5%)으로 결정하더라도 실질 임금 기준으로는 미미한 상승에 그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간 부동산 값 급등으로 불어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실타래도 고물가 시기엔 한층 풀기 어려워진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할 경우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빚을 진 가계의 재무 위험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꾀하려다 금융 안정을 훼손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처 강화나 배달료 및 12개 외식품목 가격 공시와 같은 임시방편적인 대책에만 몰두하는 것도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손쉽게 알 수 있는 외식품목 가격이나 배달료 등을 별도로 공개하는 것은 그 효과보다 정부의 물가 안정 의지를 보여주는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물가 뿐만 아니라 금융 안정과 경기 측면을 두루 살펴 정책 수단의 강도를 조절하더라도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만큼은 더 두텁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새 정부는 취약차주에 대한 보호 대책과 실질 소득 감소에 따른 취약계층 보호 대책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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