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은 제공
“인내하겠습니다(Keep at it).”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1일(현지시각) ‘자이언트 스텝’(정책금리 0.75%포인트 인상)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장이 이 발언에 주목한 건 1980년대 초 경기 침체를 무릅쓰고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올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자서전 제목(<인내>·Keeping at it)과 같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높은 실업률 등 ‘경제 경착륙’(급격한 침체)도 불사하겠다는 파월 의장의 의지가 이 말 한마디에 뚜렷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연준의 이런 강경 대응 기조는 이날 공개한 연준의 경제 수정전망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당장 미국의 올해 실질 경제 성장률 전망치(이하 4분기 기준 전년 대비)를 기존 1.7%에서 0.2%로 1.5%포인트나 낮춰잡았다. 내년 이후에도 1%대 성장률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현재 연 3.00∼3.25%인 기준금리가 내년 4% 후반까지 치솟으리란 전망이 반영됐다.
파월 의장은 이날 “현재 상황이 경기 침체로 연결될지 여부는 아무도 단정하기 어렵지만, 상당 기간 추세 이하의 성장이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태”라고 했다. <블룸버그>는 “시장 참가자 설문조사와 장·단기 금리차(10년물-2년물)로 따져본 향후 12개월 내 미국의 경기 침체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고통 없는 방법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길은 없다”며, 경제 연착륙(완만한 하락)을 두고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도 했다. 시장 금리 급등으로 성장세가 꺾이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8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는데, 이때 고려한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제치는 1.7%였다. 미국 성장률이 대폭 하향 조정된 만큼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도 더 내려갈 공산이 커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오전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기재부·한국은행 등 경제팀은 ‘넓고 긴 시계’를 견지하며 현 상황에 대응하겠다”면서 “단기 변동성 관리뿐 아니라 내년 이후의 흐름까지도 염두에 두고 최적의 정책 조합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둔화하며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악재와 마주하고 있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며 환율 급등 등으로 현재 연 2.50%인 기준금리도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시장 금리가 뛰면 소비·투자 등 내수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특히 올해 2분기 말 기준 1869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가계신용 기준)는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때마다 연간 이자 부담이 약 6조6천억원씩 늘며 소비를 짓누를 전망이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경쟁적인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수출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이달 1∼20일 무역적자가 벌써 41억달러(약 5조8천억원)에 이르며 대외 건전성을 좌우하는 경상수지 역시 향후 월간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기구 등은 한국의 올해 이후 성장률 둔화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기존 전망치 대비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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