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의 갈림길에 선 한국은행의 행보를 두고 시장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달에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한은의 최종 금리 수준을 두고서는 전망의 편차가 커지는 모습이다. 한은의 통화긴축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진욱 한국씨티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4일 낸 보고서에서 “한은의 최종 금리가 3.50%일 확률은 60%, 3.25%일 확률은 40%”라고 분석했다. 이달 24일과 내년 1월 예정된 두 번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차례 ‘베이비 스텝’만 밟은 뒤 금리 인상을 종료할 가능성도 40%에 이른다고 본 것이다.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는 3.00%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둔화 등의 영향으로 기준금리 전망치가 일부 하향 조정되며 시각 차가 커지는 분위기다. 여전히 최종 금리가 3.75%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시장 예상을 밑도는 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지난 10일(현지시각) 이후 케이비(KB)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모두 한은의 최종 금리가 3.75%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 금리 인상 종료를 점치는 쪽은 금융 안정에 무게를 둔다. 지난 9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본격화한 채권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의 불안 조짐을 감안하면 한은의 통화긴축도 오래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에프티엑스(FTX)의 파산 신청도 새로운 리스크 요소로 거론하고 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금융 안정에 보다 주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한 컨퍼런스에서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적 압박의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며 “금융 안정 유지,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의 금융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에 찬성했던 박기영 금통위원도 같은 날 “(물가·환율과 함께) 지금은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국내외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셈법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지난 9월 5.6%에서 10월 5.7%로 소폭 올랐다. 지난달부터 반영된 전기·가스 요금 인상의 영향이 컸는데, 이같은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력공사의 누적된 적자로 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탓이다. 지난달 12일 열린 한은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은 조사국은 “내년 누적된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 압력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당 기간 5%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행보도 변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앞서 암시한 것처럼 미국의 최종 정책금리 수준이 5%대에서 형성되면, 한국 기준금리 고점이 3.75%라고 가정해도 한-미 정책금리 역전 폭은 1%포인트를 훌쩍 넘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이 또 다시 원-달러 환율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셈이다. 연준은 다음달 14일(현지시각) 위원들의 새로운 정책금리 전망치가 반영된 점도표를 공개한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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