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이 이어지는 5일 경북 포항시의 한 도로 갓길에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파업에 나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에 조합원 명부 등 12가지 항목에 대한 자료제출 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 아니어서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유럽연합은 협상력이 약한 1인 자영노동자의 단체교섭에는 경쟁법을 적용하지 말라고 회원국에 권고한 바 있다.
5일 공정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화물연대에 조합원 명단 등 자료제출을 명령했다”며 “사업자성을 확인하려면 사업자인지 아닌지 봐야 하므로 명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정위는 지난 2일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과 부산 화물연대 사무실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화물연대가 소속 화물운송노동자에게 파업 동참을 강요한 정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조합원 명단 등을 요구한 것은 공정위가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조처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경우 ‘무늬만 사장님’인 특수고용노동자부터 앱을 통해 일감을 얻는 플랫폼 노동자까지 노동의 실태가 다양한데도 모두를 ‘사업자’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공정위가 제출을 명령한 자료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데다 노조가입 여부 등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도 보호받는 민감한 정보에 해당해 ‘노조 탄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화물연대는 자료제출을 비롯한 공정위의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남준 화물연대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노동자들은 수차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권고한 노동자들”이라며 “노동자들에게 공정거래법(부당공동행위)이 적용될 수 없으며 전체 조합원 개개인의 민감한 신상정보를 포함한 노동조합 운영과 활동에 대한 모든 자료의 제출과 무차별적인 조사에 응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공정위의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과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어 노정 갈등을 키울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냐, 아니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1인 자영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주는 분위기다. 지난 9월 유럽연합은 “노동자에 버금가는 상황에 놓여있거나 협상력이 약한 1인 자영노동자에게는 경쟁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일하는 1인 자영노동자는 개별적인 협상에서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단체협상은 ‘담합’으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다양한 노동실태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다 개인사업자로 보고 공정위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는 설령 진정한 자영업자라고 하더라도 협상력이 약한 1인 사업자라면 단체 교섭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데까지 논의가 진전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