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적 성격”을 갖는 은행업의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금융권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공공성 강화의 해법을 시장 경쟁에서 찾는 게 모순된다는 시각이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은행업을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부 추가 인가와 같은 ‘메기 효과’를 언급한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으나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는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5대 시중은행이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냈음에도 공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행의 공공성 강화 문제를 시장 경쟁 촉진으로 푸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은행업은 공공성을 고려해 인허가 제도로 운영되고, 공적 자금도 지원받는데, 규제를 풀어 시장 경쟁에 맡기겠다는 것이 공공성 강화랑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은행은 공공성을 강조하는 과점산업인데, 경쟁산업으로 만들어버리면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 산업자본도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며 “은행의 공공성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거래, 금융소비자 보호 등 금융감독 강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소비자 후생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것은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과 배치되기 때문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며 “은행이 시장에 새로 진입하거나 퇴출되는 건 굉장히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대기업에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공공재’ 개념도 틀렸다는 지적이 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어떤 상품이 단지 공공성을 갖는다고 공공재가 될 수 없다”며 “소비에서의 비경합성, 배제 불가능성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은행은 공공재가 될 수 없으므로 이미 틀린 개념이 들어간 발언이라 논의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발언에 금융권도 여러 해석이 엇갈리면서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은행권의 과점 구조를 허물어버리고 ‘완전 경쟁’ 체제로 유도한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자, 금융당국은 수위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을 완전 경쟁으로 가져가는 나라는 없다. 큰 골격을 흐트러뜨리는 게 아니라, 인터넷 전문은행처럼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메기를 집어넣어주는 효과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은행을 추가 인가하는 등 경쟁을 조금 더 촉진하는 취지라는 해명이다.
다만 당국이 수위를 조절한 ‘메기 효과’ 역시 이자 장사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2016~2021년 추가 진입이 허용된 인터넷 전문은행 3사 비중은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은행 총 자산의 3%도 안 되는 반면 5대 시중은행의 비중은 70%를 웃돈다. 인터넷 전문은행들은 여전히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를 끌어내릴 만큼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인터넷 전문은행 10개를 도입해도 5대 시중은행 과점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며 “시중은행 2~3개 정도는 만들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테지만 그 정도 규모의 자금은 산업자본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은행들로부터 한시적으로 예대마진 산출 근거를 제출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