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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단독] 산은, 적자 한전 손실 낮춰잡아 ‘정부 배당’ 챙겨줬다

등록 2023-03-09 10:00수정 2023-03-09 15:55

국책은행·공기업 ‘주먹구구 회계’ 논란
산업은행, ‘장부상 흑자’ 커져 대규모 정부 배당
가스공사도 손실 반영없이 ‘장부상 이익’ 착시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회계정보 제공”
전남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본사 건물. 한국전력공사 제공
전남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본사 건물. 한국전력공사 제공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과 국책은행의 손실을 낮춰 잡는 석연찮은 회계 처리를 방치해 배당을 듬뿍 받아 가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는 정부가 정작 공공 부문의 회계엔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2021년부터 현재까지 은행 회계 장부에 자회사인 한국전력공사 지분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손상차손이란 보유 자산의 경제적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생겼을 때 ‘자산이 손상’됐다고 여겨 그 가치 하락분을 재무제표에 손실(영업 외 비용)로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계회사 투자 주식의 장부상 금액이 100억원이고 이 주식을 통해 앞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50억원이라면, 장부가치를 50억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그 차액(장부가액-회수 가능액)인 50억원을 비용에 포함해야 한다. 이때 회수 가능액은 보유 주식을 팔았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과 계속 보유할 경우 미래에 들어올 현금 중 큰 금액으로 정한다.

산은은 한전 지분 32.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한전의 당기순손실은 지난 2021년 5조2156억원에서 지난해 24조4199억원으로 확대됐다. 한전 주가도 2020년 12월30일 1주당 2만7400원에서 현재 1만7710원(올해 3월8일 종가)으로 35%나 내렸다. 이처럼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산은의 지분율 만큼 한전 순손실을 산은에도 반영(지분법 손실)하고, 이와 별개로 한전 주식의 가치 하락분(손상차손)을 산은의 추가 비용으로 잡아야 하지만 손상차손은 쏙 빼놓았다.

이처럼 한전 지분 가치의 하락 징후가 뚜렷한데도 산은이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는 건, 별도의 외부 평가를 통해 방어 논리를 마련해서다. 산은은 “외부 회계법인에 용역을 의뢰해 매분기마다 한전 지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며 “한전 주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현금이 장부금액보다 높다는 결론이 나와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한전 수익성의 핵심인 전기요금을 올리면 재무 상황도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산은은 외부 회계법인의 한전 지분 가치 평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전 주식의 손상차손 미반영은 산은의 ‘장부상 흑자’ 확대로 이어진다. 산은은 한전이 5조원대 적자를 낸 2021년 당기순이익 2조4618억원을 기록해 이듬해 정부에 8331억원을 배당했다. 거액의 현금을 가져간 정부는 정작 최근 산은 재무 상황이 나빠지자 지난해 말 사실상 현금화가 불가능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주식 5650억원어치를 현물로 출자하는 등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이런 석연치 않은 회계 처리는 또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대표적이다. 가스공사는 외국에서 사 온 액화천연가스(LNG)를 국내에서 구매액보다 싸게 팔아 적자가 생기면 이를 비용에 반영하지 않고 별도의 미수금 자산(기타 자산)으로 쌓아둔다. 지난해 말 기준 가스공사의 주택용(민수용) 미수금은 8조6천억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미수금 회계 처리는 가스공사가 실제론 대규모 적자를 내도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는 까닭에 ‘장부상 이익’을 기록하는 착시 효과를 부른다. 가스공사는 누적 주택용 미수금이 1조8천억원에 달했던 2021년에도 이런 장부상 이익을 기준으로 정부에 659억원을 배당했다. 올해는 적자 회사가 빚 내 정부에 배당하는 게 문제라는 비판이 일자 주주 배당을 일단 보류했으나 이번엔 소액주주들이 “미수금 회계 처리는 위법”이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난달 2일 서울의 한 건물 벽에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서울의 한 건물 벽에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공공 부문의 변칙적인 회계 처리는 지배 구조 고리를 따라 정부까지 줄줄이 연결되는 모습이다. 가스공사의 장부상 이익은 공사의 2대 주주인 한전은 물론, 한전 최대주주인 산은의 장부상 이익 확대로 이어진다. 이처럼 에너지 공기업 중심의 ‘이익 높여 잡기’는 결과적으로 정부 배당 확대로 귀결된다.

공공 부문의 회계 관리 정책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가스공사의 경우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데도, 정부의 예외 적용에 따라 유일하게 미수금 회계 처리를 허용 받고 있다. 가스공사 결산 검사 권한을 가진 감사원도 미수금 회계 처리엔 손을 놓고 있다. 산은은 외부감사법을 적용하는 주식회사가 아닌 데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금융 당국 감리와 감사원 결산 검사를 모두 받지 않는다.

물론 정부도 이런 회계 처리를 그대로 두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전기·가스요금을 올리면 한전과 가스공사 수익성도 단번에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현실적으론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공기업 재무 사정에 정통한 한 회계사는 “회계적으로 가장 나쁜 게 투자자 등 의사 결정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공기업 회계 기준을 만드는 기획재정부 등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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