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 안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금융·통신 분야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은행권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가 빨리 오르는 이자 장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자 장사 문제로 과점체제의 큰 틀을 흔드는 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식이라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은 업무 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추가 인가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그 대표 사례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최근 미국에서 파산하며 신중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은행권 금리 공시 강화, 대환대출 서비스 도입 등 핀셋 처방부터 속도감있게 추진하고 과점체제는 중장기적으로 신중히 접근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의 과점체제가 시작됐다”며 “이후 은행부문과 자본시장간의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은행중심의 금융시스템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은행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건 맞다고 보지만, 위험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되지 않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자칫 경쟁을 늘리려다 유동성 위기에 취약한 소규모 은행이 난립하게 되면, 대내외 충격으로 이 은행들이 무너질 경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도 스타트업을 주 고객으로 하는 사실상 특화은행으로 대형은행보다 약한 규제를 받아왔다.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미시적인 제도 개선부터 집중하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은행들이 지난해 금리 인상기에 예대마진이 벌어져 수익 올린 게 독과점 때문이니 완전 경쟁을 해야 된다는 건 적절한 처방은 아니다”라며 “스몰라이센스나 챌린저뱅크는 특정 분야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은행을 만들자는 건데 시중은행 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것과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안팎에서는 현재 은행 추가 인가부터 인터넷 전문은행이나 저축은행, 지방은행을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특히 비은행권의 업무 영역 확대도 논의 대상에 포함돼 보험사나 증권사·카드사는 이 틈을 타 해묵은 숙원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는 모양새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는 “보험사나 증권사는 자금 조달 통로가 다양한 만큼 다양한 불안 요인이 존재한다.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핵심은 금리 상승기 취약계층의 대출 이자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라며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대환대출 서비스를 하루 빨리 상용화하고, 금리인하요구권의 실효성을 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과점체제를 깨트려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는 것은 근본 틀을 손대는 것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도 불투명하다”며 “한시적으로 예대마진 산출 근거를 금융당국에 제출해 고금리 때 예대마진을 줄이고 향후 저금리 때 예대마진을 좀 허용해 주는 방식 등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고민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은행권 과점체제 문제는 리스크가 큰 고금리 국면이 지나간 후 중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은행권 과점체제로 금리 경쟁이 좀 약해졌다는 지적은 있을 수 있으나 갑자기 은행 수를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