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부적격 인사가 경영진으로 장기 집권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한겨레>가 접촉한 30명의 전·현직 금융권 전문가들은 당국이 직접적으로 금융회사 인사에 구두개입해서는 안되며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임기를 두달 가량 남겨 놓고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직을 내려놓은 변양호 브이아이지(VIG)파트너스 고문은 “금융회사 내부통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사회가 경영진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며 “이사회는 법원이나 당국이 묻는 사법·행정적 책임과 별개로 경영의 결과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 투자 상품에서 사고가 나면 이사회에서 당장 최고경영자(CEO)를 그만두게 할 수도 있고, 연임을 막을 수도 있고, 감봉을 할 수도 있다. 이사회가 이런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주고 푸시(압박)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을 역임한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 교수는 “제대로 된 이사회라면 금융 사고가 났을 때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또 금리가 급격히 인상돼 소비자 고통이 클 때는 은행이 과도하게 수익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경영진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해외에서는 회장과 친해도 이사회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무서우리만치 냉혹하게 평가와 비판이 이뤄진다. 이사 개개인이 투철한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갖는 것은 물론 이사회 내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내고 수용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가 우선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복수의 전직 지주 사외이사들은 케이비(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 후보 선정 제도를 모범 사례로 지목했다. 케이비금융지주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평가·선정 주체를 분리해 놓았다. 후보 추천은 지주 주주와 외부 헤드헌팅회사가 하고, 이 후보군에 대한 정량 평가를 별도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이 한다. 외부 헤트헌팅회사의 평판조회까지 마치고 나면 금융경영, 회계, 소비자보호 등 8개 분야에서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추려진 숏리스트를 이사회 내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기존 사외이사와 친소관계를 통해 경영진이 특정 인물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할 수 없는 구조다.
이사회 운용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이사회의 경우 회장이 이사회 일원으로 참석하고 주요 경영진이 배석한 상태에서 논의가 이뤄지는데, 경영진보다 안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외이사들이 촌철살인 의견을 내기 어렵다”며 “중요 의사결정은 미국 배심원 제도처럼 사외이사간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선임 이사가 결론만 이사회에 전달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경영권 승계프로그램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는 임추위나 회추위가 평소 10∼20명의 내·외부 인사를 롱리스트로 관리하는데, 외부 인사의 경우 평소 접점이 없다가 현 경영진 임기가 끝날 쯤에나 연락해 심층 면접을 두어번 보는 게 끝”이라며 “이래선 제대로된 평가가 이뤄질 수 없으므로 롱리스트보다는 숏리스트를 관리하고, 내부 임원은 주요 보직에서 경영 경험을 쌓고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송민경 한국지배구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배구조의 핵심은 사전 예방과 사후 추궁인데, 만약 이사회가 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면,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이 주총에서 이사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주총에서 이들 연임을 승인하지 않으면 평판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사외이사들도 이사회에서 ‘외부 주주 압력이 크다’며 할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영진은 이사회가, 이사회는 주주가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지분이 큰 국민연금 역할이 중요하다”며 “연기금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사외이사들을 지원해주는 주체로서, 시장 환경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사회 강화 외에 금융사 경영진 등에 대한 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주요 임원과 사외이사들에 대해서 금융당국이 이사회와 주총 전에 적격성 심사를 벌인다. 적격성 심사 과정과 판단 근거까지 서류로 남겨야 한다. 당국의 개입이 공식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이사회와 주총에서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 뒤 금융당국엔 사후 통보하는 한국에선 당국 입김이 장막 뒤에서 작용해 부당한 ‘관치’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과 대비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국이 카운터파트인 금융지주사 경영진에 대해 적격성 면에서 리스크가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근거를 밝히고 투명하게 안 된다고 얘기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윤연정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