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런치플레이션’ 언제까지 이어지나
‘런치플레이션’ 언제까지 이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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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민 음식을 대표하는 것이 ‘규동’이다. 흔히 ‘쇠고기덮밥’이라고 부르는 이 음식은 아주 얇게 썬 쇠고기와 양파를 간장 양념에 달콤짭짤하게 끓여내 밥 위에 얹은 것이다. 규동은 1990년대 말 ‘보통 크기’ 한 그릇에 400엔가량 했다. 2000년 한 업체가 290엔으로 떨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업체 간 가격 경쟁에 불이 붙었다. 2012년 한 업체가 280엔으로 떨어뜨렸고 한시적으로 30엔 추가 할인해 250엔에 파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출혈경쟁은 하지 않는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스키야는 지난 2월22일 규동 가격을 품목에 따라 10~30엔 올렸다. 지표가 되는 ‘보통 크기’는 한 그릇에 400엔(3887원)으로 동결했다. 23년 전 가격이다.
일본의 직장인들은 얼마짜리 점심을 사먹을까? 에스비아이(SBI)신세이은행은 해마다 회사원들의 한달 용돈과 점심값 지출액 등을 조사해 발표한다. 2022년 4월 전국의 20~50대 직장인(비정규직 포함) 27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사람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남성의 경우 33.9%였고, 여성의 경우는 52.0%로 절반을 넘었다. 일본 직장인은 점심으로 파는 도시락(남 21.2%, 여 17.2%)을 사먹거나, 사원 식당을 이용(남 15.0%, 여 8.3%)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외식의 비중은 남성이 13.2%, 여성이 6.5%에 그친다.
도시락을 싸가거나 재택근무 때 집에서 해먹은 경우를 제외하고, 구내식당 이용, 편의점 도시락 사먹기, 외식 등으로 지출하는 점심값은 남성 회사원이 평균 623엔(6140원), 여성 회사원은 평균 656엔(6460원)으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 남성이 727엔, 20대 여성이 709엔으로 가장 지출이 많았다. 50대는 남녀 모두 평균 점심값이 600엔을 밑돌았다.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전에 비해 컸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2월 사이 1.4% 올랐다. 같은 기간 외식 물가지수는 2.4% 올랐다. 이 기간 동안 만약 직장인들의 점심값도 외식 물가만큼 올랐다면 지출액은 남성이 639엔, 여성이 672엔, 평균 655.5엔으로 커졌을 것이다. 원화로 계산하면 약 6370원(3월15일 한국은행 고시환율 100엔당 971.81원 적용)이 된다.
우리나라에선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09년부터 직장인의 점심값을 조사해왔다. 표본 수가 적고 조사 항목의 세부 데이터를 다 공표하지 않아 일본 자료에 맞춰 비교하기는 어려워도, 2021년까지는 평균 지출액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식비가 큰 폭으로 오른 2022년에는 부담이 컸던지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다만 ‘점심값 사용 정도’ 항목으로 ‘5천~1만원’이 69.7%, ‘1만~1만5천원’이 16.7%, ‘5천원 미만’이 12.2%를 차지했다고만 발표했다.
2021년 5월 잡코리아가 우리나라 직장인 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평균 점심값은 6805원이다. 도시락을 싸오는 직장인의 점심 비용까지 포함한 평균치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사먹는 직장인들은 평균 8049원을 쓰고, 편의점 음식을 사먹는 경우 6300원, 구내식당 이용의 경우 6009원을 쓴다고 대답했다. 각각의 비중은 발표하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이때도 60.9%가 “현재 지출하는 점심값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얼마쯤이면 좋겠는지 물었을 때, 16%쯤(1109원) 낮은 5696원이 적당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후 식당 밥값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잡코리아의 조사가 이뤄진 시점이 2021년 4월이라면, 소비자물가지수를 활용해 지금 점심값 지출이 얼마로 늘었을지 대략 추정해볼 수 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2021년 4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외식 물가는 13.05% 올랐다. 편의점 음식값이나 구내식당 음식값도 외식 물가만큼 올랐다면 평균 점심값은 7700원으로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매일 외식을 하는 경우라면 점심값은 9100원으로 뛰었을 것이다.
잡코리아 조사에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추천(복수응답)하는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찌개류가 48.2%로 가장 많았고, 백반(34.8%), 돈가스(33.3%), 순대국(27.3%) 등 차례였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를 보면, 김치찌개 백반 가격은 2021년 4월 6857원(전국 16개 광역시도 평균)에서 올해 2월 7820원으로 14% 올랐다. 직장인 평균 점심값 지출액 추정치와 비슷하다. 비빔밥은 7932원에서 9020원으로 13.7% 뛰었다.
최근 2년 새 우리나라의 외식비 물가 상승세는 매우 가팔랐다. 2021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소비자물가가 8.24% 오르는 동안, 외식 물가가 13.05%나 올랐다. 외식 물가에 영향을 끼친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 통계분석을 해보면, 같은 기간 15.29% 오른 가공식품, 12.38% 오른 석유류(연료비)가 외식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쌀값이 큰 폭으로 떨어져 농축수산물 원자재 가격 상승(4.21%)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 반면 집세(2.39% 상승)와 외식 물가 상승의 관계로 볼 때, 상가 임대료도 외식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가공식품, 석유류 등의 가격 상승은 4개월 뒤 외식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조금씩 둔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외식 물가의 상승세는 여전히 가파르다. 한달간의 상승률이 작년 11월 0.28%에서, 12월 0.48%, 올해 1월 0.52%로 뛰었는데, 2월에는 0.72%에 이르렀다. 점심을 식당에서 사먹는 직장인들의 시름이 한동안 더 깊어질 것 같다. 2019년 잡코리아 조사(1308명)를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46.3%는 회사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는다. 구내식당 이용 비율은 28.5%,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비율이 9.6%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직장인들이 점심을 회사 밖 식당에서 사먹는 비율이 매우 낮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도시락을 사서 먹거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 그런 대안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외식비 폭등 시절의 의미있는 사내 복지이겠다. 외식 물가 폭등에 따른 직장인들의 한숨을 정부도 나몰라라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말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사내 급식 등을 제공받지 않는 근로자가 받는 식사대’의 비과세 한도가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랐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과세 한도를 30만원으로 올리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지난 10일 대표발의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일본 직장인 평균 점심값 6천원대
밥값 걱정도 커지는 직장인들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이슈치솟는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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