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매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4.2%를 기록하며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했다. 유가 하락 영향이다. 그러나 공공요금 인상, 산유국 감산 등 물가를 다시 들썩이게 할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2023년 3월 소비자 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0.56(2020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4.2% 상승했다. 오름 폭이 올해 1월 5.2%에서 2월 4.8%, 3월 4.2%로 두 달 연속 둔화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2022년 3월(4.1%)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품목별로 공업 제품이 2.9% 오르는데 그치며 물가 상승폭 둔화를 이끌었다. 휘발유와 경유가 각각 17.5%, 15% 내리는 등 석유류 가격 하락 영향이다. 석유류의 물가 기여도는 지난 2월 마이너스(-) 0.05%포인트에서 지난달 -0.76%포인트로 확대됐다.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며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끌어내린 셈이다.
그러나 수요 쪽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히 견조한 편이다. 3월 서비스 물가는 3.8% 오르며 한 달 전과 같은 상승폭을 유지했다. 외식 물가 상승률이 7% 넘는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택시·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도 인상된 여파다. 전기·수도·가스요금도 28.4% 뛰어 물가를 1%포인트 남짓 밀어올렸다. 농축수산물 역시 전년 대비 3% 상승하며 오름폭이 2월(1.1%)보다 커졌다.
계절적 요인, 일시적 수급 충격 등으로 가격이 들쭉날쭉한 품목을 제외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지난달 4.8% 오르며 일반 물가상승률(4.2%)을 오히려 웃돌았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이런 근원물가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건, 2021년 1월 이후 2년2개월 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반영한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4% 상승하며 2월과 같은 오름폭을 보였다.
소비자가 자주 많이 구매하는 품목 144개 가격을 조사한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에 견줘 4.4% 오르며 상승폭이 전달보다 1.1%포인트 축소됐다. 반면 생선·채소·과실 등 신선식품 지수는 7.3% 뜀박질하며 2월(3.6%)보다 오름폭이 확대됐다. 이는 지난해 10월(11.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난방비 상승으로 하우스 재배 채소 가격 등이 뜀박질해서다. 양파와 풋고추 가격은 각각 60.1%, 46.2% 급등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물가가 많이 상승한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도, “다만 공공요금 인상과 석유류 등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서비스 물가 등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 유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6.28% 오른 배럴당 80.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전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원유 추가 감산을 발표한 여파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 선물은 지난해 3월 말 배럴당 100.28달러에 이르렀으나, 올해 3월 말 75.67달러로 약 25% 하락한 바 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열린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국제 유가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상당폭 하락했으나, 최근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결정으로 급반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시장에선 국제 유가가 배럴달 80달러 내외에서 박스권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른 수요 감소로 유가가 다시 100달러를 뚫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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