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이달 말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인하를 오는 8월까지 추가 연장한다. 국민의힘 요청을 정부가 수용하는 모양새다. 반면 에너지 공기업들의 수십조원대 적자 해소를 위한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유류세 인하폭 축소, 공공요금 단계적 현실화 등을 하겠다던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꼬일 대로 꼬인 모양새다. 감세 연장에 따른 세수 부족 심화도 또 다른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18일 “이달 종료 예정인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처를 오는 8월 말까지 4개월 연장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달 25일 국무회의를 열어 유류세 인하 연장을 위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이는 전날 국민의힘이 정부에 유류세 인하 추가 연장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여당 요구 직후에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생 부담 측면에서 (유류세 인하 연장 요청을) 전향적으로 진지하게 다시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애초 정부는 유류세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계획이었다. 세금 감면폭을 줄여 에너지 과잉 소비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계획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 그대로 담겼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오는 8월 말까지 현행 휘발유 유류세 25%(리터당 205원), 경유 유류세 37%(리터당 212원) 인하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유류세는 2021년 11월부터 4차례 추가 연장을 거쳐 1년 넘게 낮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기재부는 “오펙플러스(OPEC+, 산유국 협의체)의 원유 감산 발표 이후 국내 유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국민 부담 경감이 필요한 점을 고려했다”고 인하 연장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를 보면, 전국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오펙플러스가 감산을 발표한 이달 2일 리터당 1594.97원에서 17일 1656.9원으로 3.9% 올랐다. 같은 기간 자동차용 경유도 1.8% 상승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경제부처 국장급 간부는 “여당은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더니,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유류세 인하 연장으로 정부는 수조원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당정이 지난달 말 잠정 보류한 올해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 인상도 시간만 질질 끌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나는 여름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로 요금 인상이 불투명해지자 한국전력공사 등 에너지를 밑지고 파는 공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종수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는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에너지를 아껴 쓸 유인이 없다”며 “요금을 100% 정상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려야 한전 적자를 비롯한 에너지 시장 왜곡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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