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재 적용 중인 유류세 인하 조처를 8월 말까지 4개월 더 연장하기로 한 18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에 휘발유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3년째 계속돼온 유류세 인하 조처를 18일 또다시 연장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전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했던 윤석열 정부가 결국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 눈치 보기에 치중하며 ‘탈탄소 정책’에도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2021년 11월부터 3차례 추가 연장돼온 유류세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세금 감면 폭을 줄여 에너지 과잉 소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데다, 올해는 세입 예산 대비 세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이런 전망을 깨고 이날 유류세 인하 조처 연장을 발표한 건, 고물가 속 국제 유가마저 다시 상승해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서민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당인 국민의힘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고물가 속 국민 부담 최소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책을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한국전력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폭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2분기(4~6월)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부는 지난달 31일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를 개최한 뒤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 결정을 잠정 보류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번 유류세 인하 연장 결정을 두고, 정부 스스로 약속한 에너지 과잉 소비 개선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가스 요금에 이어 유류세까지 다 붙잡아놓으니 소비자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아무리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더라도 먹혀들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21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과도 엇박자를 내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이 계획을 통해 2030년 수송 부문 배출량은 2018년 대비 37.8% 줄이겠다며,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괄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면, 휘발유 차량을 편하게 쓰라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환경 정책 싱크탱크 사단법인 넥스트의 윤지로 미디어 총괄은 “유류세 인하 유지를 통해 늘어나는 자동차 사용 수요에 대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가 말하듯 서민 살림살이를 생각한다면 대중교통 강화 정책 등 다른 방책 마련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 등 에너지 선진국들은 고유가 상황에 따라 한시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적용하긴 했지만, 한국처럼 서민 생계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장기간 유류세 인하 조처를 취하진 않았다. 특히 유류세가 유류 가격의 50%를 차지하는 독일의 경우, 지난해 6~8월 유류세 인하 조처를 취하며 ‘9유로(1만2천원) 패스’를 도입해 6개 연방주에서 모든 대중교통(지역 간 고속열차 제외)을 한달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유류세 인하로 늘어날 수 있는 개인의 승용차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또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유류세 인하 연장이 “개인 승용차 사용이 많은 고소득층에 오히려 유리한 정책”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도 “유류세를 걷어 대중교통에 지원을 해야 서민 지원이 되는 것”이라며 “단편적 지원이 아닌 교통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발표한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논의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유류세 인하 혜택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고르게 돌아갈 수 없다면 취약계층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 가격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마련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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