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보도자료 2개를 기자들에게 메일로 보냈습니다. 열어보니 5월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경제 정책 성과를 정리한 홍보 자료였습니다.
역대 정권마다 출범 후 특정 시기를 기념해 홍보 자료집을 내놓은 터라 새삼스럽진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1년을 맞은 2018년 5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경제 부문 성과와 과제’를 논의했는데요. 당시 9장에 불과했던 출범 1주년 홍보 자료 분량이 현 정부 들어 그 5배가 넘는 52장으로 늘어난 게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문제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인데요. 현 정부는 경제 정책의 대표 성과로 ‘건전 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꼽았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일시적으로 늘렸던 재정 지출을 되돌리는 건 성과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당연한 일인 데다, 올해 세수 펑크(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힘)가 기정사실이 되며 재정 적자와 나랏빚이 불어나게 된 현실과도 괴리가 큰 데요.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대목은 더 있습니다. 정부가 그간 완화한 규제 1개당 경제적 효과가 4605억원(152개 규제 혁신 통한 5년간 경제적 효과 70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한 것이나, ‘민간 주도 일자리’를 강조하며 뒷짐지던 정부가 낮은 실업률 등 고용 지표를 자기 성과라고 가져가 쓴 것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죠.
같은 보수 정부라도 박근혜 정부의 경우 출범 1주년이었던 지난 2014년 2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주요 경제 지표의 임기 말 목표치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인데요. 당시 기재부 1차관을 지낸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이런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특히 기재부가 ‘국민과 함께 달려온 위기 극복의 1년’이라는 제목의 추 부총리 홍보자료를 별도로 만든 것도 이례적입니다. 이 자료집의 소제목들은 ‘발로 뛰는 부총리’, ‘위기 극복을 위해 쉼없이 달려온 1년’, ‘소통하는 부총리’, ‘전세계를 아우르는 광폭 행보’ 등으로 과거 재벌 그룹 총수 동정 자료에서나 봤던 문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 ‘부총리’ 자리에 ‘회장님’을 넣어봐도 자연스러운데요. 보도자료의 일부 대목을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2023년 1월 11일, 회장님이 직접 마이크 앞에 깜짝 출연했다. 회장님은 “회장 지시 사항이니 얼른 집에 들어가라”며 직원들에게 정시 퇴근을 지시했고, 퇴근송으로 뉴진스의 ‘하잎 보이’를 재생했다. 직원들은 웃으면 퇴근할 수 있었고, 그 이후 회사에는 매주 수요일 정시 퇴근 문화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부의 주인은 국민인데요. 국민은 온데간데없고 관료들끼리 주인이 사라진 조직의 상사를 마치 민간 기업 총수처럼 떠받드는 모양새죠. 요즘은 대기업도 총수 관련 보도자료를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공직 후배들이 부총리를 위한 ‘총선용 꽃길’을 깔아준다는 괜한 오해만 사는 게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대통령실 주문에 따라 각 부처의 보도자료 작성 형식을 바꾸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기재부의 경우 중요한 단어나 수치만 요약해 짧게 나열하는 기존 ‘개조식’ 문장을 없애고 모든 보도자료를 기사체로 쓰기로 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자료에 쓸 문장과 제목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거나 정부가 알리고픈 내용만 부각하는 객관성 상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오는데요. 정말 중요한 건 포장과 형식이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의 내용’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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