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연합뉴스
지난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전력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45% 내린 주당 1만8410원에 마감했다. 앞선 15일부터 3일 연속 하락세다.
시장 분석가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전기 요금 인상안(킬로와트시(kWh)당 8원)에 향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정부안 수준으로는 이른 시일 내에 한전의 재무구조가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봤다는 얘기다. 한전 주가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10일(주당 2만2600원)에 견줘 1년여 만에 18.5% 하락했다.
한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장부에는 얼마로 평가돼 있을까. 산은의 별도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한전 주식의 장부금액은 16조9천억원, 주당 8만105원이다. 시세보다 장부에 4.4배 높은 가격으로 반영돼 있는 셈이다. 장부에 시세가 아닌 취득 당시 가격으로 적어뒀기 때문이다.
산은의 또다른 장부에는 한전 지분 가치를 13조3천억원, 주당 6만3천원으로 적어두고 있다. 연결 회계 기준을 적용해 작성된 장부에서다. 별도 재무제표에서의 한전 지분 장부가와 차이가 나는 것은 연결 재무제표에선 자회사인 한전의 적자를 지분율(32.9%)만큼 장부에 손실(지분법 손실)로 반영하고 이를 한전 주식의 장부가에도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어느 방식이든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장부가는 시세를 반영하지는 않고 있다.
일부에선 한전 주식의 시세와 산은 장부가 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대목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장부가가 시세를 곧바로 반영하지 않더라도 시세와 장부가 간 차이가 매우 클 때는 장부가를 조정하는 게 일반적인 회계 처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유 자산의 경제적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생기면 그 가치 하락분을 ‘영업외 비용’(손상차손)으로 반영하는 게 회계 처리의 원칙이다.
예컨대 한전 주식의 장부상 금액이 10조원이지만 이 주식을 통해 앞으로 회수할 수 있는 돈이 5조원에 불과하다면 장부가치를 5조원으로 낮추고 그 차액(장부가격-회수 가능액)인 5조원을 비용에 포함해야 한다. 회수 가능액은 주가와 주식 보유로 미래에 얻을 현금 중 큰 금액으로 정한다. 산은은 한전 주가가 계속 내려도 손상차손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산은은 외부 회계법인의 평가를 근거로 삼아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외부 회계법인은 한전 주식이 가져다줄 미래 회수 가능액을 모두 24조6천억원, 주당 11만6천원 수준으로 평가해 산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지분가치를 시세는 물론 장부가보다도 더 높게 본 것이다. 이런 평가는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적자가 머지 않아 해소되고 이익을 낼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전기요금 정상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이번 요금 소폭 인상 결정이야말로 정부의 약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있는 터라 앞으로도 요금을 큰 폭으로 끌어올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일부에선 산은의 한전 주식 가치 자체 평가에 숨은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전의 지분 가치를 시세에 가깝게 재평가해 장부에 반영할 경우 산은이 건전성 논란에 휩싸이고 그에 뒤따를 정부의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지는 점을 산은과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전 적자에 따른 지분법 손실만 반영했음에도 이미 산은의 건전성은 흔들리고 있는 터다. 대표적인 은행 건전성 지표인 총자본비율(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은 2021년 말 14.88%에서 지난해 말 13.4%, 올해 3월 말에는 13.08%까지 하락했다. 적정 자본 비율의 마지노선이라는 13%에 턱걸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1조원어치를 산은에 현물 출자한 데 이어, 현금 1200억원을 조만간 추가 출자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두고 “전 정권의 비과학적·정치적 정책이 초래한 국민 피해”라고 했다. 정부 회계 장부에 반영된 금액을 크게 밑도는 한전 주가는 ‘남 탓’하기 어려운 현 정권의 정치적 정책 여파를 보여준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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