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며 경제 규모 순위도 13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와 중국·반도체 등 특정 분야의 수출 쏠림이 심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한겨레가 세계은행(WB)의 경제 규모 상위 100개국 지디피 자료를 분석해보니, 지난해 한국의 명목 지디피는 1조6652억달러로 1년 전에 견줘 8% 줄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9.9%)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달러화 기준 한국의 지디피는 코로나19 전후인 2019년과 2020년 각각 4.3%, 0.4% 뒷걸음질한 뒤 2021년 10.1% 뛰어올랐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경제 규모 상위 100개국 중 지난해 한국보다 지디피가 더 큰 폭으로 줄어든 나라는 우크라이나(-19.7%), 스리랑카(-15.9%), 일본(-15.5%), 미얀마(-8.8%), 가나·스웨덴(-8%) 등 6곳뿐이다. 우크라이나와 스리랑카는 전쟁, 외환위기를 겪고 있고, 일본의 경우 통화 완화 정책 여파로 지난해 엔-달러 환율이 19.8%나 급등한 바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지디피 감소가 다른 주요국 대비 두드러진 셈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 순위도 2021년 세계 11위에서 지난해 13위로 두 단계 내려갔다. 앞선 2020년 10위권까지 진입했으나 9년 전인 2013년(13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달러로 환산한 지디피가 큰 폭으로 뒷걸음질한 것은 지난해 미국 정책금리 인상발 ‘강달러’ 현상 속에 한국 원화가 무역수지 적자 등으로 뚜렷한 약세를 보여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달러 대비 원화 가치(연간 평균)는 1년 전보다 12.9% 급락(원-달러 환율 급등)했다. 유로(11%), 영국 파운드(10.1%), 캐나다 달러(3.9%), 스위스 프랑(4.5%) 등보다 절하 폭이 크다. 이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 경기 하강, 대중국 수출 부진, 에너지 수입 급증 등이 원화 약세를 부추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단순히 환율 탓만도 아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도 지난해 한국과 엇비슷한 수준의 자국 통화 약세를 겪었지만, 지디피 감소 폭은 한국보다 작았다. 예컨대 독일의 전년 대비 2022년 지디피 감소 폭은 -4.4%, 영국 -1.7%, 프랑스 -5.9%, 이탈리아 -4.9%, 스페인 -2.1% 등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09년 한국 지디피는 전년 대비 9.9% 급감했지만 그 직후인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21.2%, 9.5% 늘며 큰 폭으로 반등했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 경기 회복 등으로 가파른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통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공급망 균열과 재편, 경제 안보 부상 등 글로벌 통상 질서의 새로운 흐름에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명당 명목 지디피는 1년 전보다 7.8% 줄어든 3만2255달러다. 다만 경제 규모 상위 50개국 가운데 한국의 1명당 지디피 순위는 2021년과 2022년 모두 22위에 머물렀다. 특히 지난해 통화 약세로 1명당 지디피가 15.1% 급감한 일본(1명당 3만3815달러)과의 소득 격차가 1560달러로 바짝 좁혀졌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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