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지난 7일 리터당 휘발유값이 2천원을 넘긴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연합뉴스
2023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4%였다. 2%대 상승률이 6월(2.7%)과 7월(2.3%), 겨우 두달 이어지고는 3%대로 다시 올라섰다.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 연 2%와 다시 차이가 벌어졌다. 한국은행이 머잖아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도 멀어졌다.
8월 물가지수는 7월보다는 1% 올랐다.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57개 품목으로 구성된 농산물이었다. 전달보다 10.5%나 오르면서, 상승률을 0.47%포인트 끌어올렸다. 폭염과 폭우로 날씨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석유류 4개 품목의 상승 기여도도 컸다. 전달보다 8.1% 오르면서, 상승률을 0.34%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기름값이 물가 변동에 핵심 변수로 다시 떠올랐다.
국내 기름값에 영향을 주는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 올해 흐름을 보면, 상반기엔 4월13일 87.36달러 최고치에서 하락세가 이어졌다. 6월1일엔 71.66달러까지 떨어지며 60달러대 진입 기대를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70달러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7월13일 81.09달러로 오르더니, 9월6일 90.58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찍으며 90달러대에 진입했다.
일본천연가스자원정보의 보고서(8월14일)는 7월 이후 국제 유가의 상승에는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예고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펙플러스(OPEC+)의 감산합의와 별개로 7~8월에 걸쳐 실시하기로 했던 독자적인 원유 감산을 9월에도 하겠다고 밝혔고, 러시아도 하루 30만배럴을 감산하겠다고 했다. 흑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격화한 것도 원유 가격을 끌어올렸다.
최근 두 나라가 감산 조처를 연장하기로 하면서, 국제 유가는 한 계단 더 뛰어올랐다.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7월 시작한 하루 100만배럴의 자발적 감산 정책을 12월까지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노바크 부총리도 이날 하루 30만배럴 감산을 올해 말까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맞서 손을 잡은 두 석유 대국의 생산량 조절이 국제 유가를 좌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0월 초 러시아와 손잡고 ‘오펙플러스’ 산유국들이 11월부터 하루 200만배럴 감산하는 결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세계 각국의 긴축통화정책도 지속돼 가격 끌어올리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에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7월부터 금리 인하 등의 방식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어, 추가 감산이 유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자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파레토증권 상품애널리스트인 나디아 마틴 위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첫 달처럼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말했다. 물론 100달러까지는 무리라는 전망도 있다. 일본 미쓰비시유에프제이파이낸셜그룹(MUFG)의 에산 코만 원자재 담당 수석분석가는 지난 6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오펙플러스가 미국이나 다른 산유국들의 공급을 촉발하게 할 초고유가를 원하지는 않는다며, 브렌트유의 올해 말 전망치를 84달러, 내년 말 전망치를 87달러로 봤다. 스위스 투자은행 유비에스(UBS)는 미국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연말까지 6%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7일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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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제품 소비자들의 부담을 키운다. 오피넷 집계를 보면, 지난 6일 기준 국내 주유소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750.77원이다. 연초의 1540원대에 비해 200원 넘게 올랐다. 지난해 8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경유값은 1642.31원으로, 연초의 1700원대에 비하면 아직 싸다. 현재 휘발유는 리터당 205원, 경유는 212원의 유류세가 할인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8월 말에 두달 더 연장하기로 한 ‘유류세 인하’ 조처를 두고 또 한번 고뇌에 직면하게 됐다. 2021년 11월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된 유류세 인하는 처음엔 인하율이 20%였다. 휘발유에 매기는 리터당 세금을 820원에서 656원으로 164원, 경유에 매기는 세금을 581원에서 465원으로 116원, 엘피가스·부탄은 203원에서 163원으로 40원 내렸다. 인하율은 2022년 5월부터 30%로 확대됐고, 7월부터 연말까지는 최대치인 37%로 키웠다.
유류세 인하는 대규모 세수입 결손을 부르고,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제품의 소비 억제를 유도하지 못하는 난점이 있다. 세수입 감소는 올해의 경우 월 7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7월까지 휘발유 국내 소비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4% 늘어났다. 이런 부작용에도 ‘민생’을 고려해 한번 단행한 세금 인하는 기름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쉽게 되물릴 수가 없었다.
정부는 올해 들어 휘발유 감세 폭을 37%에서 25%로, 감세액을 304원에서 205원으로 낮췄다. 경유(212원), 엘피가스·부탄(73원)은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수준의 감세(37% 인하)를 4월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4월이 되자 8월까지 연장했고, 8월에는 10월까지 더 연장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16일 인하 조처를 연장할 것임을 밝히면서, “10월 말 이후에는 국제 유가 동향 등을 살펴보고 그때 추가로 방침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격 흐름으로 보면 인하 조처 중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인하 폭을 줄이자는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감세액이 소비자 가격에 다 반영된다면 유류세 인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3~0.4%포인트 낮춘다. 문제는 감세 혜택이 소비자에게 다 돌아가지 않고, 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장희선(전북대)·최봉석(국민대) 교수가 지난 3월 ‘에너지경제연구’에 실은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이란 논문을 보면, 2021년 11월부터 세금 인하 조처가 시행되는 동안 휘발유의 경우 세금 인하분의 26~49% 정도만 판매 가격에 반영됐다. 경유는 12~27%가 판매 가격에 반영됐고, 유류세 인하 폭이 30%이던 시기엔 효과가 아예 없었다. 논문은 “유류세를 원칙대로 징수하고 이 재원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이 필요한 대상에게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유류세 인하를 중단하는 것으로 보고, 유류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을 2022년 실적(11조1164억원)보다 38% 많은 15조3258억원으로 잡아놨다. 그런데 인하 조처를 또 연장한다면, 가뜩이나 적은 세수에 추가 결손이 또 생긴다.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