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위 삼성그룹이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료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영입에 나서며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는 미래전략실 부활을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3일 기재부에 따르면 ㅇ기재부 부이사관(국장급)은 조만간 사표를 내고 이르면 이달 중 삼성전자 임원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기재부 국장급이 삼성으로 이직하는 건 지난 2016년 김이태 부이사관(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담당 부사장) 이후 7년 만이다. ㅇ부이사관도 부사장급으로의 이직이 예상된다. 다만 삼성에서 맡게 될 구체적인 역할은 확인되지 않는다.
ㅇ부이사관은 행정고시 42회로 기재부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에서 거시 경제 정책 및 정책 조율 업무를 주로 담당한 ‘정책통’으로 기업환경과장, 경제구조개혁총괄과장 등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행정관 및 선임행정관을 각각 역임한 바 있다.
김이태 부사장과도 가까운 사이다. 김 부사장이 ㅇ부이사관의 이직을 조율했을 거라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정부 관료는 “JY(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 직접 기재부 출신을 뽑으라고 지시한 거로 안다”며 “미래전략실(옛 삼성그룹 총괄 조직으로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 부활을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기재부 외 다른 부처 관료들의 삼성 이직도 줄 잇고 있다. 산업부는 ㅇ서기관이 삼성전자 부장급 이동을 조율 중이다. 기재부 ㅇ부이사관과 행시 동기인 공정거래위원회 ㅇ전 과장(행시 42회)과 금융위원회 ㅅ전 과장(행시 43회)도 지난해와 올해 모두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로 이동한 바 있다. ㅇ상무와 ㅅ상무는 전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주중한국대사관 금융관 등을 지냈다.
앞서 삼성그룹으로 이직한 한 관료 출신 인사는 “ㅇ부이사관 외에 기재부 과장급 관료도 삼성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일단 삼성글로벌리서치 등 다른 조직에서 일하다가 그룹의 옛 미래전략실 또는 구조조정본부가 부활하면 그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간 금융위·산업부 출신 관료 등의 민간 기업 이직은 드물지 않았지만, 경제 선임 부처인 기재부 공무원의 삼성 이동 사례는 흔치 않다. 김이태 현 삼성전자 부사장과 박준규 삼성생명 부사장이 2016년 삼성행을 택한 이후 처음 나오는 사례인 만큼 기재부 내부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경제 부처의 한 40대 관료는 “인사 적체 문제에 더해서 정치권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며 관료들의 정책 권한이 축소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줄이 감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으니 공직을 향한 회의감이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달라진 정책 환경 등이 인력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이재용 회장이 인재 영입과 관련해 직접 지시한 바 없다. 영입은 각 사업부나 계열사에서 주관한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