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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삼성의 약속은 역사에 남는다

등록 2023-08-01 19:06수정 2023-08-02 02:06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5월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3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5월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3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프리즘] 이완 | 산업팀장

“이거는 좀 민감한 내용입니다.”

2017년 가을 퇴근길에 전화가 왔다. 이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2년을 조명해 쓴 기사에 대해 설명하려는 회사 관계자 전화였다. 기사는 합병을 추진할 당시엔 ‘장밋빛 전망’을 내걸었는데, 막상 2년이 흐른 결과를 보니 합병의 시너지는 온데간데없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만 좋은 일이었다는 평가를 담고 있었다. 이재용 회장(지분율 18.13%)-삼성물산(19.3%)-삼성생명(8.5%)-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만들어진 삼성물산은, 건설·상사·패션·리조트·급식·바이오 부문이 한 지붕 아래 모인, ‘주력’이 뭔지 알기 힘든 회사가 됐다. 회사 쪽은 이런 기사 내용이 외국인 투자자 등이 보기엔 민감한 내용이라는 설명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플랫폼에 쭈그려 앉아 기사에 오류가 없는지 다시 살펴야 했다.

6년 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삼성, 엘리엇과 ‘비밀합의’…지난해 724억 지급했다’라는 기사 때문이다. 2015년 삼성이 합병을 추진할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은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이건희 전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제일모직과 물산을 1:0.35 비율로 합병하기로 계획을 짰고,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은 이를 주주가치 훼손이라 주장하며 격렬한 주주 표 대결로 몰고 갔다. 합병안은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아 가까스로 통과됐고, 2016년 3월 삼성은 엘리엇이 합병 반대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724억원을 건네는 비밀합의를 맺었다.

그렇게 ‘엘리엇의 공격’이라는 파장이 깊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물산과 모직 합병의 실익을 기사로 따져보겠다고 하니 ‘민감한 내용’이라는 반응이 나왔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삼성물산의 최근 실적을 살폈다. 2022년 삼성물산은 ‘역대급’ 실적(연결기준)을 냈다. 매출액 43조1616억원, 영업이익 2조5285억원.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사 부문 매출이 13조2515억원(2020년)에서 17조3544억원(2021년), 20조2175억원(2022년)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며 전체 매출을 끌어올렸다. 삼성의 신수종 사업인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도 컸다. 바이오 부문 매출은 1조1636억원(2020년)에서 1조5680억원(2021년), 3조12억원(2022년)으로 늘었다.

삼성물산이 크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2015년 합병 추진 때 내놓았던 비전에는 한참 못 미친 실적이기도 하다. 당시 삼성은 합병의 이유로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내걸고, 2020년 매출 60조원의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했다. 건설·상사를 가진 삼성물산과 패션·바이오를 가진 제일모직을 묶기 위해 시너지와 광범위한 다각화, 토털서비스 등 꺼낼 수 있는 비즈니스 용어는 총동원했다.

그때 상황을 알고 있는 전 증권사 애널리스트(건설 담당)는 “2015년에 회사 쪽의 합병 설명을 한참 듣다가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그래도 ‘합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묻자, 간담회장에 정적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며 “건설과 모직과 상사를 합쳐서 키우겠다는 논리는 그때도 부족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업의 목표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하지만, 시작부터 빗나간 ‘과장광고’였던 셈이다.

삼성은 이제 또 다른 약속의 시험대에 서 있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삼성·현대차·엘지(LG)·에스케이(SK) 그룹에 재가입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들은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태 때 정경유착 비판이 거세지자 전경련을 탈퇴했다. 2016년 말 국회 청문회장에서 이재용 회장은 “저는 개인적으로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고 했다.

삼성이 물산-모직 합병 때 주주에게 했던 약속은 ‘과장광고’로 남았다. 이재용 회장이 7년 전 약속을 지킬지도 역사에 분명히 남을 것이다.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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