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여파로 자금 시장에 변화가 뚜렷하다. 은행권 기업 대출이 늘고 회사채 시장에선 순상환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도 회사채 발행보다 은행 문을 두드린다.
5일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764조3159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7조9852억원 늘었다. 1년 전에 견주면 무려 59조6452억원 증가했다. 전달에 견준 기업 대출 잔액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대출 증가세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 10월 말 대기업대출 잔액은 137조3492억으로 전달보다 4조3587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 증가폭의 54.5%를 대기업이 차지한 셈이다. 전월에 견준 대기업대출 증가액은 3조1949억원(8월)→3조5861억원(9월)으로 매월 불어나고 있다.
반면 직접 금융시장인 채권시장을 활용한 자금 조달은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 7월부터 3개월 연속 일반 회사채는 순상환되고 있다. 회사채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금감원과 집계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10월 한 달 간 회사채 순상환액은 2조9493억원이라고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는 추산했다. 10월 순상환액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경색이 일어났던 지난해 10월(연합인포맥스 기준 5조4304원·금감원 기준 3조406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은행 쪽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르게 상승한 회사채 금리 영향이 크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4~5월만해도 연 4% 초반(유통시장 기준)에 형성된 3년 만기 회사채 금리(AA-)는 이후 가파르게 뛰어 11월 초 현재 연 4% 후반대에 형성돼 있다. 발행 시장에선 투자자들은 이보다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3~5년 전 1~2%대 금리로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한 기업들로선 차환 발행보다는 상환 뒤 은행 문을 두드리는 게 좀더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 예로 에스케이(SK)온은 지난 9월 만기가 된 회사채(5년 만기·금리 연 1.54%) 1400억원어치를 갚은 뒤 최근 대출과 보증을 합해 1조원을 향후 3년 간 받기로 농협은행과 양해각서를 맺었다.
금융당국도 자금 조달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최근 일부 기업이 시장 불확실성·금리부담 등으로 자금 조달을 회사채에서 은행 대출이나 기업어음(CP)으로 변경하는 등 조달 여건에 변화가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연초 대비 회사채 잔액이 500억 이상 감소한 60곳 중 20곳은 은행대출, 5곳은 기업어음, 11곳은 사모사채, 24곳은 자체 자금으로 회사채를 상환했다고 밝혔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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