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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뜨거운 여름은 갔고 이제 겨울이 온다.

백신 개발·제조 전문기업인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가 주식시장에 떠들썩하게 상장한 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3월이다. 여러 기록을 갈아치웠다. 공모 규모, 청약 건수, 증거금 모두 역대 최대였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일반투자자 청약접수 기간에 은행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급증했다. 청약만 되면 남는 장사라고 여기저기서 외쳐댔다. 공모가 6만5천원에서 시작해 주당 36만원까지 치솟은 이 회사 주가는 최근 5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고위험 자산인 주식이 원래 그런 거라고 치부하기엔 개미들의 곡소리가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차례 빅딜을 거친 뒤 국내 산업계는 화석이 된 듯 변화가 없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치고 나가고 에스케이와 현대차가 뒤쫓는 형국인데 순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철강·화학·조선 등 주력 산업군도 10년 남짓 그대로였다.

여기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게 카카오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포털 다음을 인수하고 금융·모빌리티·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리더들의 메시지나 그룹 운영 방식도 기존 재벌과는 다른 듯했고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그러는 속에서 카카오 주가는 2021년 6월 17만원대까지 올랐다.

오늘날 주당 4만원 아래로 폭락한 주가가 의미하듯 이 회사는 과연 우리가 믿던 ‘카카오가 맞나’란 의구심을 던진다. 혁신이란 껍데기 뒤엔 무질서한 내부 규율과 고위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이 잇달았다. 그 끝에 최고경영진과 최대주주가 연루된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 혐의가 불거진 터다. 성장통치고는 충격적이고 치명적이다.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와 카카오 이야기 배경엔 코로나와 케이팝 열풍 같은 각각의 서사가 있지만, 공통 배경 하나를 꼽는다면 ‘저금리’ 환경을 들 수 있다. 돈의 홍수 속에 잉태된 꿈과 희망, 그에 가려져 있던 무심함과 협잡 말이다. 홍수로 들어찼던 물이 빠지고 나면 그간 가려져 있던 진흙투성이가 된 온갖 잡동사니 같은 도시의 속살이 드러나듯, 우리는 현재 돈 가뭄이란 새 환경 속에 금융·산업계의 속살을 마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얼마 전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투자 결정 때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고려하고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나 때늦은 메시지다. 전기차 배터리 회사를 품고 있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부채 비율은 5년 새 87.0%에서 180.8%로 두배 넘게 뛰었다. 부채를 수반한 투자는 성장의 밑거름이지만 고금리 시대엔 얘기가 달라진다. 마냥 ‘고’(GO)를 외치기엔 두드려봐야 할 돌다리가 적지 않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거나, 여기에 실패해 도태하거나 기업 세계에서는 일상일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이런 변화가 매우 가팔랐다는 점이다. 저금리 기간은 10년 넘게 지속됐고 금리가 가파르게 오른 건 최근 1~2년 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시장 참여자들은 ‘글쎄’라며 금리 하락 쪽에 베팅했다. 고금리 환경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았다. 오늘날 정책·기업·금융·투자 영역에서 핵심 실무급에 있는 40대 말, 50대 초 인사들은 저금리 시대에 성장해온 이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고금리 시대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들이 오늘날 우리 경제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그래서 더 무섭고 긴 겨울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이유다.

무서운 겨울이 도래할 것 같은 요즘 위기의 한국 경제를 끌고 나갈 정책 컨트롤타워의 역량과 자세는 어떠한가. 각 분야 책임자 상당수는 내년 총선에 한눈이 팔려 있는 듯하고 “(국제통화기금이 전망한) 한국의 내년 성장률 2.2%는 국내총생산 1조달러 이상 국가 중 최고”(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란 한가한 소리를 하거나 “상생금융 때문에 대출 금리가 내려간 것 아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라며 가계빚 증가 책임론을 비켜가려는 데 급급하지 않은가. 그나마 겨울의 도래를 경고하며 일찍부터 목소리를 내온 이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