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이세영 | 전국부장
‘그아아아앙!’
거리는 아침부터 쇠 깎는 소리로 요란했다. 정체 모를 탄내와 비릿한 쇳내가 영하 7도 찬 공기에 섞여 비강을 파고들었다. 좁고 어둑한 작업장 안쪽에선 용접 불꽃의 흰색 섬광이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시골 살았어. 경남 거창. 원래 농사만 지었는데, 나라에서 소 키우면 돈 된다며 융자금 퍼주길래 송아지를 10마리나 들여 키웠지. 근데 소값 파동 나면서 싹 다 망해버렸어. 그게 1983년이야. 그길로 서울 왔지.”
서울 문래동, 구로동 공구상가, 경기도 시흥 신천리…. 서울 을지로 철공소 거리에서 만난 박 사장이 젊은 시절 거쳐온 동네 이름을 담담하게 읊었다. “여기? 88올림픽 하던 해에 왔어. 36년 됐구먼.”
그의 명함엔 시보리, 밀링가공, 선반가공, 베벨기어, 랙기어 같은 공작 용어가 빼곡했다. “이것 좀 보라고.” 하루 전에 만든 것이라며 한뼘 길이 강철 나사를 꺼내 보이더니, 별안간 몸을 돌려 27년을 함께했다는 ‘보물 1호’를 목장갑 낀 손으로 쓰다듬었다. ‘통일’이란 제조업체 이름이 선명했다. “나처럼 볼품없어 보여도 이 선반으로 못 만드는 게 없어. 이놈 덕에 사이판 쪽 호텔, 엘에이 교민들하고도 5년 넘게 거래했다니까.”
40년 쇳밥 인생을 지탱해준 공작기계들이지만,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박 사장은 안다. 청계천 건너 ‘세운 4구역’에서 시작된 철거·재개발 바람이 지척인 ‘세운 5-1·3구역’까지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머잖아 여기(세운 5-4구역)도 올 거야. 일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계속하려면 포천·안양·김포 같은 데로 가야 하는데, 지금 거래처의 5분의 4는 끊겨버릴 테니까.”
그날 저녁 박 사장의 단골 밥집들이 숨어 있는 ‘세운 5구역’ 철공소 골목엔 쇠 비린내 가득했던 낮시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 세계의 주력은 삼미정, 향촌식당, 백만불식품 같은 골목길 노포들이 불러 모은 직장인들이었다. 맛집 블로그 등에선 봄부터 늦가을까지 노포 앞 골목길에 들어선다는 ‘야장’ 소문이 자자했는데, 야외 탁자에 둘러앉아 삼겹살, 닭볶음탕, 갑오징어 숙회 따위를 안주 삼아 술잔 부딪치는 모습이 세기말 홍콩 영화의 뒷골목 신을 연상시켰다.
이렇듯 누군가의 눈엔 쓸어버려야 할 어지러운 ‘슬럼’이지만, 그 안에선 다양한 세대·계층의 생활인들이 오랜 시간 구축한 땀과 쇠와 술과 밥의 네트워크가 분주히 작동하고 있었다. 상황은 ‘인쇄거리’라 불리는 충무로역 인근 ‘세운 6-2구역’도 마찬가지였다. 이 구역의 골목은 몇년 새 인쇄산업과 공생해온 오래된 밥집과 선술집, 레트로 감성 자극하는 골목 풍경이 눈 밝은 도시여행자들 탐지망에 포착되면서 토박이 주민과 인쇄업자, 충무로·을지로 일대의 젊은 사무직, 외국인 관광객이 함께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이곳 역시 서울시 구상대로라면 5년 안에 모두 사라져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신의 ‘도심 디자인 철학’으로 내세운 가치는 ‘녹색’과 ‘역사’다. 시민의 지대추구 욕망을 자극하며 토건세력과 부동산 자본의 주머니를 부풀리는 개발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들이다. 지난해 10월 광화문 월대 복원 현장에선 “누구나 녹색의 위로를 받으며 동시에 우리의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서울 도심을 만들어가겠다”고도 했다.
쟁점은 세운상가 건물군을 철거해 공원화하고, 주변 지역에 대규모 주거·사무용 빌딩을 지어 올리려는 ‘오세훈표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그가 표방한 철학과 가치를 찾아볼 수 있느냐다. 표면상 그가 제시한 재개발 프로젝트의 목표는 ‘녹지 확대와 직주근접 실현을 통한 도심 활성화’다. 문제는 그것이 원주민과 세입자를 추방하고, 돈 있는 중산층을 도심에 이식하는 현행 방식대로 이뤄지는 한 ‘세련된 공간 약탈’ ‘녹색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혐의를 벗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가 강조한 ‘역사’가 당대와 윗대의 땀내 밴 삶의 흔적을 철저히 배척한다는 점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오 시장은 “도심 디자인의 큰 그림은 좀 떨어져서 봐야 이해가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낡은 세운상가를 따라가며 보라. 실핏줄 같은 골목길 따라 피어난, 넉넉지 않으나 풍요롭고, 어지럽지만 정돈된 ‘일과 밥과 삶의 복합 공간’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