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태영건설 ‘꼬리자르기’ 의심
금융당국 “황당하다…의미 파악 중”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하기로 채권단과 약속했던 자신의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몫 416억원을 5일 돌연 그룹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의 자본 확충에 전액 투입하는 안건을 이사회에서 전격 통과시켰다. 채권단은, 태영건설을 포기하는 쪽으로 윤 회장이 ‘꼬리 자르기’에 본격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어, 오는 11일 워크아웃 개시 여부 결정 시한을 앞두고 윤 회장과 채권단 사이의 대치가 확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5일 오후 티와이홀딩스는 한국거래소에 공시를 내어 “5일 ㈜티와이홀딩스가 이사회를 열고 416억원어치 ‘무기명 무보증 사모사채(영구채)’ 발행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전액 인수하는 쪽은 윤석민 회장(티와이홀딩스 최대주주)이다. 416억원은 지난해 말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2062억원) 가운데 윤 회장이 본인 몫으로 가져간 자금으로, 채권단과 태영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협의 과정에서 이 매각대금 전액을 태영건설에 투입·지원하기로 합의했었다. 윤 회장이 갑자기 약속을 파기하고 이 돈을 티와이홀딩스에 투입하기로 한 셈이다.
태영 쪽은 이번 자금 조달 목적을 “그룹 유동성 확보”라고 밝혔다. 이 신종자본증권으로 자본이 확충된 티와이홀딩스가 태영건설 자금 지원에 우회적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만, ‘태영건설에 대한 416억원 직접 지원’이라는 채권단과의 약속을 윤 회장이 파기한 것이어서 채권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황당한 일이다. 윤 회장 일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우리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태영이 또 채권단 말을 듣지 않고 어긴 걸로 본다. 태영은 ‘사실상 우회적으로 태영건설에 넣은 거다’라고 말할 테지만 채권단이 볼 땐 아니다”라고 말했다. 채권단으로서는 태영 대주주의 태영건설 정상화 의지를 더욱 신뢰하기 어렵게 돼, 워크아웃 여부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윤 회장의 이날 전격 행동에 대해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태영건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가게 될 것을 예상한 사전 포석이자, 전날 금융당국의 ‘최후통첩’에 맞서 막판까지 채권단을 압박하려는 카드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워크아웃이 불발돼 태영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티와이홀딩스는 태영건설 주식지분(27.28%)에서 대거 손실이 발생해 재무구조가 악화될 터인데, 이를 염두에 둔 윤 회장이 티와이홀딩스를 지키기 위해 영구채를 통한 자본 확충에 미리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법정관리행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밝혀, 채권단에 ‘워크아웃 개시’를 간접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