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폴 크루그먼이 선정되었다. 크루그먼은 경제학계에서 노벨상보다 타기 어렵다는 클라크 메달(미국 경제학회가 40세 이하의 최고 경제학자 1명에게 2년에 한 번 수여하는 메달)을 이미 받았으므로 노벨상을 예약해놓은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쉰다섯살의 수상은 예상보다 이르다. 그의 수상에는 금융위기라는 환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도한 시장만능주의가 빚은 참사이니 만큼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해온 크루그먼의 공로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에 시작해서 지난 40년간 60여명이 수상하였다. 가뭄에 콩 나듯이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받기도 했으나 수상자의 다수가 추상적 모델을 만지작거리는 미국의 보수적 경제학자들이었고, 그것도 시카고학파의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많았다. 초기 수상자 중에는 미국 경제학계의 쌍벽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먼이 있었다. 시카고학파의 수장 밀턴 프리드먼이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스웨덴의 진보적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잡지 기고를 통해 강력 항의하였다. 뮈르달은 1973년 군부의 잔혹한 쿠데타 후에 칠레 경제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찬양했던 프리드먼과 노벨상의 정신은 맞지 않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뮈르달은 자신이 2년 전에 이미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을 후회하면서 차라리 노벨경제학상을 폐지하자고까지 말했다.
크루그먼은 종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하나는 진보파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현실 문제에 적극 발언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실제 그는 미국 민주당 당원이기도 하며, <뉴욕타임스>에 글을 써서 공화당과 부시의 경제정책에 맹공을 퍼부어 왔다. 미국의 공화당은 원래는 온건 보수였는데, 1980년대 이후 네오콘들이 득세하면서 과거의 양심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버리고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봉사하는 극단적 이데올로그의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레이건과 부시 부자(父子)의 작은 정부,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정책이 미국경제에 가져온 것은 저성장, 양극화, 쌍둥이 적자(재정적자 및 무역적자)의 천문학적인 누적이다.
이것이 비단 미국경제의 후퇴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에 엄청난 재앙을 몰아오고 있어서 지금 크루그먼의 혜안이 더욱 빛을 발한다. 모처럼 노벨경제학상이 진보적 경제학자에게 주어진 것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앞으로 경제학의 물줄기도 보수일변도를 벗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레이건, 부시의 경제철학을 앵무새처럼 답습해온 이명박 정부도 이쯤 되면 노선을 변경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는지 걱정이 크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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