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제국주의의 착취가 없었더라면…’이란 가정을 해보면 선·후진국 간 소득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영국이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을 시작하던 1760년 무렵, 인도의 1인당 소득은 영국의 70~90%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800년 중국의 1인당 소득은 당시 영국보다 높았다는 추계도 있다. 1800년께 세계 각국의 소득격차는 아주 작았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제국주의는 세계질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지난 2세기 동안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이 경제적으로 약진할 때 제3세계는 경제발전이 거의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19세기에는 1인당 실질소득이 하락했다.
선진국의 경제적 약진과 후진국의 정체, 퇴보는 무엇보다 제국주의의 영향이 크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는 아홉번째 투옥된 감옥에서 쓴 명저 <인도의 발견>(1945)에서 영국의 착취가 가장 심했던 벵골 지역이 20세기에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영국의 번영은 인도 약탈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설파했다.
장기간 영국의 식민지로 착취받아 신음하던 가난한 나라 인도가 최근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요즘은 누구나 ‘브릭스’라고 해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신흥경제대국으로 치는데, 그중 인도의 전망은 특히 밝다.
인도는 젊은 나라다. 인도는 인구 구성에서 25살 미만의 인구가 54%나 되며, 이는 전세계 25살 미만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것은 중국에 없는 큰 장점이다. 게다가 인도는 정보통신 강국이라 전화 가입자 수가 납세자 수의 15배나 된다. 그 대신 부패, 인플레이션, 다인종 다언어, 카스트 제도의 잔재 등 골칫거리도 꽤나 많다.
최근 20년간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8~10%에 달해 중국에 버금간다. 경제 기적은 1991년 7월24일 발표된 신경제정책에서 비롯됐다. 당시 재무장관 만모한 싱(현 총리)은 산업 및 무역상 인허가 폐지, 수출보조금 철폐, 관세 인하, 공공부문 민영화 등 과감한 경제개혁을 발표했다. 그는 당시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했다. “지구상의 어떤 권력도 떠오르는 사상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전 인도 경제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은 관치경제였다. 컴퓨터 한 대 수입하는 데 3년이 걸렸고, 관청을 50번이나 방문해야 했을 정도였다.
관치경제 혁파 20년 만에 인도 경제는 면모를 일신했다. 현재 인도는 12억 인구에 1인당 소득은 1300달러로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인데,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평가지수로 계산하면 이미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다. 빈곤율은 20년 전 45%였는데, 지금은 32%다. 20년 전 인도를 여행한 법정 스님은 인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궁기를 풍기지 않는다고 썼다(<인도기행>, 1991).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 풍요한 나라 인도에 경제적 번영의 길이 활짝 열리고 있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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