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프랑스의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은 1835년 신생국 미국을 둘러본 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탁월한 여행기를 남겼다. 토크빌은 이렇게 썼다. “미국은 부동산 분배의 공평성 면에서 독보적인 나라인데, 한 나라의 개인 부동산이 많아지고 골고루 분배되며, 부동산 소유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토크빌의 동조자들이 나타났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2004년 10월 재선을 향한 선거운동에서 토크빌을 연상시키는 연설을 했다. “미국의 가족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때마다 미국은 더 강한 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유자 사회’의 아이디어다.
대통령이 내집 마련을 강조하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정책적 지원이 뒤따랐다. 사람들에게 보증금 없이 주택담보대출을 주는가 하면, 2년 동안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주기도 하고, 차입자의 구두 답변만 듣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바탕으로 각종 채권과 섞은 뒤 이리저리 쪼개서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따라서 그 가치를 아무도 모르는 금융파생상품도 나타났다.
중산층, 서민들이 내집 마련 대열에 대거 동참하여 미국의 자가 소유 비율은 1995년 64%에서 2005년에는 69%로 급상승했다. 그러나 무리는 무리를 낳는 법.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이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따라왔고, 그것이 바로 현재 진행 중인 금융위기의 진앙지다.
현재 200만이 넘는 미국 서민, 중산층 가구가 집을 압류당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위험에 빠졌다. 많은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서민들이 집을 잃었지만 아직 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주택가격은 20%나 하락했는데, 적어도 10%는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소유자 사회’에 좀더 접근했지만 강한 나라는커녕 금융위기를 일으켜 세계경제를 나락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영국도 비슷하다. 과거 마거릿 대처 총리가 ‘부동산 소유 민주주의’를 강조하였고,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적극 호응해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런던 금융가가 돈을 투입해서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던 부동산 가격이 최근 13% 하락하고도 계속 하락 중이다. 영국의 금융위기는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오래전 토크빌의 온당한 말이 미국, 영국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현실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무주택자를 임기 중에 없애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털어놓았다. 취지야 좋지만 영국, 미국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될 텐데.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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