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번 금융위기에서 문제가 된 금융파생상품 가운데 최고 단계가 스와프 거래이고, 그 중에서도 최후의 결정적 작품이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 CDS)이다. 시디에스라는 괴물은 1994년 제이피(JP)모건 은행의 발명품이다. 원래 은행은 대출금을 못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법에 따라 준비금을 비축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 좋은 사람들이 준비금을 생략하는 일종의 보험을 생각해냈다. 채권 부실화의 위험을 제3자에 넘기고, 그 대가로 보험료처럼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제이피모건의 회계장부에서 위험을 들어내고 거액의 준비금을 수익성 높은 데 투자할 수 있다. 제이피모건은 스와프 부서를 신설하고,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채용해 새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얼마 안 가서 시디에스는 위험을 회피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보장해주는 인기 있는 금융상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시디에스는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했다. 시디에스의 규모는 1997년에만 해도 거의 0이었으나 2007년에는 물경 62조달러에 달했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규모가 축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총생산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시디에스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 방대한 규모의 시디에스 전체가 문제가 아니고, 채권, 채무가 상쇄되면 총액의 3%에 해당하는 1조6천억달러 정도의 시디에스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선물, 옵션, 스와프 등 금융파생상품은 모두 같은 특징을 갖는다. 즉 “너,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초기에는 소액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거액으로 확대된다. 스와프는 하나하나의 순부담은 작으나 총계는 거대하다. 금융 감독당국에서는 시디에스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사적 당사자간 계약이므로 정부의 규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착오를 했다. 1987년에서 2006년까지 연방준비은행 의장으로 있던 앨런 그린스펀은 “고부채 채무자의 위험을 이전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경제안정을 위해 긴요하다”며, 시디에스를 적극 옹호했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의회 청문회에 나와서는 “시디에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 좀 더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세계 최대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는 투자은행, 보험회사 등과 계약한 140억달러의 시디에스를 부도낸 뒤 공적자금을 제공받아 겨우 위기를 벗어났으나 계속되는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시디에스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워렌 버핏은 일찍이 시디에스의 위험을 간파하고 2002년에 이미 “금융 대량살상무기”라고 이름붙인 바 있으니 과연 명불허전, ‘오마하의 현인’이란 그의 별명이 그냥 붙여진 게 아님을 알 만하다.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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