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세계는 온통 공포의 도가니다. 억울하게도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후진국의 빈민층이 집중 피해를 볼 것이다. 이번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영국의 금융계와 정책당국이 시장만능주의에 도취되어 꼭 필요한 규제조차 생략해버린 지나친 규제완화에 있다는 데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덧붙여 상궤를 벗어난 기업 내부 보상제도도 주연은 아니라 하더라도 조연 정도의 역할은 한 것으로 보인다. 보상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로서 회사 사장 혹은 회장과 일반 사원 사이의 소득격차를 들 수 있다. 이 값은 원래 미국에서는 20~30 대 1 정도로서 예를 들어 6 대 1밖에 안 되는 평등국가 일본과 비교하면 꽤 높다고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본래 평등을 이상으로 하므로 당연히 이 값이 낮은데, 오래전 중국, 쿠바,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3 대 1을 목표로 삼고 그 달성을 위해서 정책적인 노력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 대기업에서 이 값은 지난 30년 동안 상승 경향을 보여 왔다. 이 값은 특히 최근에 오면서 가파르게 상승하여 거의 400 대 1에 이르렀고, 극심한 경우에는 1만 대 1이 넘는 회사도 있어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봉뿐만 아니라 스톡옵션이라는 대박 인센티브까지 고려하면 소득격차는 실은 이보다 더 크다. 일류 배우, 가수, 스포츠 스타뿐만 아니라 재계도 보상체계가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니 미국 전체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싹쓸이 사회’(Winner-Take-It-All Society)라는 향기롭지 못한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각종 기발한 금융파생상품이 다투어 개발된 것도 천문학적 크기의 물질적 인센티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이런 불평등한 보상체제가 촉발한 면이 있다. 엄청난 보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냉철한 기업가, 금융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큰 상 밑에는 반드시 용감한 사나이가 나타난다”(重賞之下必有勇夫)는 옛말이 있지만 용감이 지나쳐 반칙을 불사하는 풍조는 곤란하다. 몇 년 전 세상을 뒤흔들었던 엔론,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건도 따져 보면 0이 몇 개인지 한참 헤아려야 하는 거액의 스톡옵션의 유혹 앞에서 이성이 빛을 잃고 만 경우다.
이번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개혁과 규제 강화가 필요함은 두말한 필요도 없거니와, 미국 경영진의 과도한 보상 또한 어느 정도 수술이 불가피하다. 독일에서는 부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주는 조건으로 임원 연봉을 50만유로 이하로 제한할 것을 재무장관 페어 슈타인브뤼크가 요구하고 있다. 과연 위기를 맞아 세상이 조금씩 바뀌게 될까?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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