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최근 노동부가 고령자 최저임금 삭감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정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여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림으로써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빈곤 축소, 분배 개선에 기여하는 정책이다. 그 대신 고용이 줄고, 실업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가르친다. 시카고학파 등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이 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종래의 통설을 뒤엎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을 많이 고용하는 맥도널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등을 대상으로 해서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조사한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이 올라도 고용은 줄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이 문제가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되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경제학계의 새 연구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화당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며 인상에 반대했다. 선거 결과는 클린턴의 승리였고, 그는 곧 최저임금을 시간당 4.25달러에서 5.15달러로 대폭 올렸다. 결과는 어떤가? 클린턴의 임기 내내 경제는 호조였고, 고용도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는데도 실업은 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우여곡절 끝에 1987년에 겨우 최저임금법을 제정했다. 한국이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당시 이미 세계 70여개국이 최저임금제를 시행 중이었으니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아주 늦게 법을 제정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재계와 보수파에서는 제도 도입에 강하게 반대했으나 그들이 우려했던 고용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너무 낮아서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은 꾸준히 상승해 왔으나 여전히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을 맴돌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월 78만6천원으로 임금총액 대비 29%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30%에 미달한다면 너무 낮은 수준이어서 과연 이런 최저임금이 애당초 실효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비교해 봐도 한국의 상대적 최저임금 수준은 낮은 편이다.
국내 연구를 보면 예상대로 한국의 최저임금은 고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회정책, 제도가 그렇듯이 최저임금제 역시 외국의 좋은 제도라고 해서 들여오긴 했지만 그 내용이 워낙 빈약해서 유명무실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이번 노동부의 최저임금 삭감안에 대해서 야당이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고 하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높지 않다. 게다가 임금을 낮춘다고 기업 형편이 좋아지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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