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미증유의 금융위기로 세계를 고통에 빠뜨린 최근의 미국 상황과 비슷한 시대를 찾자면 ‘재즈의 시대’ 혹은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1920년대로 가야 한다. 1920년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워런 하딩은 무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인데, 임기 중 부자 감세와 대기업 지원에 열심이었다. 그의 임기는 온통 무능과 부패로 얼룩졌지만 그나마 4년 임기를 못 채우고 1923년 돌연 세상을 떠났다.
1924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사업이 미국의 사업”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친기업적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은 쿨리지의 친기업 노선을 적극 환영하며,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완벽히 혼연일체가 된 적이 없었다”고 논평하였다. 쿨리지는 감세, 규제완화,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한 반면 노조에는 법과 질서를 강조하였다. 쿨리지는 주식시장에 투기 조짐이 역력한데도 시장만능주의 식으로 수수방관함으로써 대공황 초래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1928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도 비슷한 경제철학을 갖고 있었다. 후버는 1928년 8월에 “… 오늘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빈곤 극복 직전의 상황에 도달해 있으며, 이제 구빈원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곧 대공황이 닥쳐 빈곤이 전국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후버를 조롱하기 위해서 집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후버 마을’, 벤치에서 자는 사람들이 덮는 신문지를 ‘후버 담요’라고 불렀다.
공화당의 하딩, 쿨리지, 후버 밑에서 3대 연속 재무장관을 지낸 재벌 앤드루 멜런은 감세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1923년 최하위 소득계층의 세율은 4%에서 3%로 인하하는 시늉만 내고, 최상위 소득계층의 세율은 50%에서 25%로 대폭 인하하는 소위 ‘멜런 계획’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으로 멜런 자신은 소득세 80만달러를, 동생 리처드 멜런은 60만달러를 경감받았다. 1920년대 미국의 소득분배는 엄청나게 악화했다. 미국에서 최고 10% 부자의 소득몫은 대개 35% 정도인데, 1920년대 말에는 50%까지 올라갔다. 이 비중이 다시 50%로 치솟은 것은 80년 뒤 부시 임기 중이었다.
1932년 11월 대선에서 미국 국민은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선택했다. 루스벨트는 국민 투표수에서 56%를 얻었고, 42개 주에서 승리하여 선거인단 수에서 472 대 59로 공화당을 침몰시켰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을 석권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 모든 걸 보면서 우리는 저절로 묻게 된다. 과연 역사는 반복되는가?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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