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최근 모 탤런트가 출연료 문제로 다투다가 무기한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탤런트 출연료 문제가 불거졌다. 2000년 무렵만 해도 1회당 200만~300만원 정도이던 주연급 탤런트의 출연료가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더니 최근에는 억대로 치솟았다. 배용준의 1회 출연료가 2억5천만원이라니 ‘으악’ 하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류 열풍이 있다. <겨울 연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것은 참으로 나라의 경사라 할 만하다. 일본·중국 등의 텔레비전에서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간에는 사람들이 서둘러 귀가하는 바람에 시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한탕을 노리는 드라마 제작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긴 것은 하나의 결과였다. 한류스타 영입 경쟁이 벌어졌고,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은 경제학의 수요공급의 원리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인기 스타들의 출연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니 드라마 제작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드라마 제작비 중에서 탤런트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로 올랐다. 이웃 일본의 경우를 보면 국민배우 기무라 다쿠야의 1회 출연료가 우리 돈으로 5천만원 정도이고, 탤런트 출연료가 드라마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밖에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의 차이를 생각하더라도 한국 탤런트들의 출연료는 올라도 너무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스타들의 출연료 급상승으로 한국 드라마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겹사돈’이란 희귀 현상이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출연료 비용을 절감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다고 한다. 출연료 상승 때문에 다른 비용을 감축하려고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게 되고, 드라마의 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져버렸다. 품질이 떨어지니 드라마 수출도 최근 들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한때의 성공이 지금의 실패를 부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경제학에서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 이른다. 경매의 최종 승자가 비록 이겼지만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른 바람에 오히려 망한다는 역설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승자가 거꾸로 저주를 받는 기이한 현상, 이것이 바로 최근 한국 드라마의 위기를 설명해 준다. <손자병법>에 ‘전승불복’(戰勝不復)이란 말이 있다. 한번 전쟁에 이겼다고 반복해서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승리가 미래 패배의 씨앗을 잉태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소크먼의 명언도 새길 만하다. 한국 드라마는 과거의 승리 때문에 지금 오히려 고난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출연료 인하 등 엄혹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