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등록 2009-02-01 20:23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1987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주거연맹(Habitat International Coalition) 총회에서는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재개발을 하는 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개발과 성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국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당시는 불량주택 합동재개발에서 용역업체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다. 재개발지역에서 철거폭력이 빈발하여 한두명씩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러나 2009년 1월20일 용산처럼 6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대참사는 처음이다.

1977년 4월 광주 무등산에서 움막을 짓고 살던 21살 청년 박흥숙은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쳐 막무가내로 자기 집을 철거할 뿐 아니라 불까지 지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철거반원을 넷이나 살해한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일기에 “60일 동안 굶주려가면서 무등산에 집을 지었다. 흩어져 살았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었고, 나는 이 집을 어머니께 선물로 바쳤다”고 썼다. 정부당국은 그를 ‘무등산 타잔’, 이상 성격의 소유자로 몰고 갔으나 실은 그는 가난 탓에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열심히 살아가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보통 사람이 한순간에 살인을 저지를 만큼 개발독재 시절의 재개발 정책은 난폭하고 야만적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별로 개선된 건 없고 땅값 폭등으로 개발이익은 엄청나게 커져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임 4년 동안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재개발한 면적이 이전 30년간 재개발 면적의 두 배나 된다. 오직 개발, 재개발로 질주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생존권은 뒷전이고, 약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용산 재개발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지주들과 개발업자들은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누리고, 시장과 구청장은 화려한 도시의 외형을 자기 업적인 양 자랑하겠지만 그 뒤안길에는 생존마저 위협받는 세입자, 영세상인들의 고통이 있다. 인간을 무시하는 개발, 재개발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300년 전 지은 시청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조례가 있어서 인간적인 도시, 걷고 싶은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 도시를 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도시 재개발 철학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피고, 피해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오늘은 용산이지만 내일은 어디가 될지 모른다.

박흥숙은 일기에서 “정들었던 나의 보금자리, 정들었던 나의 움막 …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약한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깨닫는다”고 썼다. 우리가 약자에겐 따뜻하고, 강자에겐 엄격한 사회에서 사는 날은 언제일까. 무참히 죽어간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