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세계가 깊은 불황에 빠져들면서 도처에서 들리는 것은 우울한 소식뿐이다. 한번 회사에 취직하면 그 회사에 뼈를 묻는 ‘종신고용’의 전통을 가진 일본에서조차 대량 해고 뉴스가 들려온다. 캐논은 경쟁 업체 소니가 대량 감원을 하던 1990년대 소위 ‘잃어버린 10년’ 기간에도 한 명도 해고를 하지 않고 버틴 회사인데, 이번에는 드디어 해고의 칼을 뽑아들었다. 도요타자동차는 10년 전에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종신고용 제도를 유지하는 한 도요타의 장래는 어둡다”면서 신용등급을 낮출 때에도 종신고용 관행을 고수했지만 이번에는 국내외에서 6천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아 일본 고유의 경영 관행인 ‘종신고용’이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을 때는 일본의 종신고용 관행이 그 바탕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던 종신고용이 지금은 위기에 빠졌으니 금석지감이 있다. 종신고용이라 하지만 대상자는 일본 대기업의 남자 노동자만 해당이 되었다. 또한 문자 그대로 종신고용은 아니고, 50대 중반까지 고용을 보장해주되 이후는 방계 중소기업으로 옮겨 낮은 보수를 받고 몇 년 더 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고용 안정성은 매우 높음에 틀림없다. 장기 고용이 보장되면 노동자들이 장기적 시야를 갖고 회사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므로 생산성 향상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 경제의 고생산성의 비결이 종신고용에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반대로 해고를 남발하는 회사에서는 노사간에 신뢰가 깨지고,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단기적, 전략적 행동에 몰두하므로 장기적으로 생산성에 해로운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해고의 칼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쫓겨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빠져 인간관계가 나빠지며, 생산성이 지체되니 해고는 결코 능사가 아니다. 그래서 감원과 구조조정을 남발하는 회사는 심각한 내부 갈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이 긴요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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