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비정규직법 문제가 국회에서 아직 표류중이다. 최근 많은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만큼 문제가 심각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방대성, 악성, 차별성이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규모를 보면 통계청 추계로는 2008년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54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놀랄 만큼 많은 수다. 그러나 실제 비정규직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으니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다른 믿을 만한 추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85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53%나 된다고 한다. 둘째, 비정규직의 성격이 악성이다. 한국 비정규직의 60%는 한시적 노동자들로서 고용 자체가 불안하다. 이와는 달리 선진국에서는 비정규직의 주종은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시간제 노동이란 노동자 개인의 사정에 맞추어 유연하게 일할 수 있어서 사실 많은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 형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의 비정규직은 양성 비정규직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시간제 노동자는 아주 드물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부평초 같은 한시적 노동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다. 셋째, 임금 차별이 너무 심하다. 유럽에서는 비정규직이라도 시간당 임금에서는 정규직과 동일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한국에서는 동일 직장에서 동일노동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임금에 큰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0~60%에 불과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 혜택에서도 정규직은 80~90%가 적용을 받고 있는 데 비해 비정규직의 적용률은 30%대에 머물고 있어 하루하루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차별이 너무 커서 비정규직의 억울함을 달랠 길 없고, 한 국가 안에 1등시민과 2등시민이 공존하는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미국 흑인들은 1960년대 민권투쟁 이전에는 버스 앞좌석에 앉을 수 없었고, 식당이나 공원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개와 흑인은 출입금지’라는 모멸적 팻말이 식당 문 앞에 버젓이 붙어 있기도 했다. 지금 한국의 방대한 비정규직 노동시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차별은 과거 미국 흑인들이 받던 고초를 연상시킨다. 이 문제야말로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는 비정규직 시한 연장이니 유예니 하는 말초적 접근을 버리고 발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 지난주 이 난의 제목 ‘정규직은 가로등 같은 공공재’는 편집 과정의 착오였습니다. 올바른 제목은 ‘정규직은 준(準)공공재’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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