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정부가 내년부터 대학 학자금 대출제도를 바꾼다고 한다. 대출 한도를 늘리고, 취업 후 경제적 능력이 생길 때까지 상환을 유예해준다는 것이다. 이는 2005년부터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등록금 후불제’를 사실상 정부가 수용한 셈이다. 이 정책의 취지는 ‘교육의 기회균등’이며,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부쩍 강조하는 친서민적 정책 기조와 연결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변화는 일단 긍정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국립대의 경우 최하 1년에 400만원이고 사립대에서는 연 1000만원을 돌파한 곳조차 있어 학부모의 허리가 휠 지경이다. 등록금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필자가 대학 1학년이던 1968년에 등록금을 내려고 긴 줄에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한데, 등록금이 한 학기 1만5000원이었다. 당시 하숙비는 한 달에 5000원이었다. 40년 전에 비해 현재 국립대 등록금은 126배이고, 하숙비는 80~100배다. 다른 물가는 어떤가? 40년 동안 계란 값은 20배, 담뱃값은 40배 올랐다. 모든 상품가격의 평균인 도시 소비자물가가 40년간 23배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대학 교육비용은 폭등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중산층, 서민을 힘들게 하는 문제의 원천이므로 좀더 근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대학이 거의 무상교육이 아닌가. 물론 유럽식 복지국가는 우리에게 요원한 미래지만 너무 비싼 우리나라 대학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좋은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게다가 정부는 이번에 학자금 대출제도를 바꾸면서 지금까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원해오던 대출이자 보조와 연 450만원의 무상 장학금을 내년부터는 폐지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기계를 수리하면서 맞지 않은 부속품을 끼워 넣는 꼴이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학생들은 대학 다니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장학금은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가난한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 그것이 원래 장학금의 취지이고, 교육경제학에서 확립된 이론이며, 선진국 대학의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장학금은 으레 성적 좋은 학생들에게 주는 것으로 잘못 운영되어 왔다. 담벼락에서 흔히 보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광고에 ‘모 대학 장학생’이란 문구는 필경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란 뜻이지 가난한 학생이란 뜻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장학금 개념이 왜곡돼 왔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근거에서 지난 정부 때 약간이나마 장학금 정책의 개선이 있어서 현재 국립대에서는 정원의 9%까지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원칙을 갖게 됐다. 이를 더 늘려나가도 모자랄 판에 무상 장학금 폐지는 잘못이다. 장학금은 가난한 학생에게 주는 것이라는 기본 원칙을 확립할 것, 과다한 대학 등록금을 제한할 것, 이 두 가지가 문제를 푸는 근본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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