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올해는 큰 별이 유난히 많이 떨어지더니 얼마 전 또 하나의 큰 별이 떨어졌다. 허창수 신부(본명 헤르베르트 보타바)가 지난 8월26일 향년 6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독일 국적의 허 신부가 선교의 명을 받고 한국에 부임한 날은 하필이면 유신헌법 발표 하루 전인 1972년 10월16일이었다. 거리에 늘어선 탱크와 서슬 퍼런 군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허 신부는 이후 성주, 왜관, 구미, 대구에서 노동사목 활동과 앰네스티 일을 하면서 유신독재에 맞섰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당시 전투경찰은 허 신부가 있던 성당을 늘 포위했고, 노상 각종 협박을 해댔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8명의 무고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에 항의하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조지 오글 목사를 국외 추방했으니 허 신부에 대한 협박도 빈말이 아니었다. 허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만일 길을 가다가 쓰러져 있는 한국인을 보면 내가 외국인이니 그를 못 본 체 지나쳐야 합니까?”
허 신부는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를 만들었고, 한국 노동운동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것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유방임 자본주의도 아닌, 말하자면 일종의 ‘제3의 길’이었다. 허 신부가 생각한 이상적인 자본주의 모델은 조국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였다. 그것은 히틀러의 파쇼경제도, 스탈린식 사회주의 명령경제도 아닌,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와는 다른 자본주의 모델이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2차대전 후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경제장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아래서 그 전성기에 도달했다.
여기서 시장경제 앞에 붙는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중요한데, 그 의미는 국민경제의 운용을 영미형 국가에서처럼 그냥 시장에 방임하는 게 아니고,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해 기업 간의 공정경쟁, 노사 간 힘의 균형, 약자에 대한 배려를 위해 힘쓴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결국 자유방임 체제에서 싹튼 현실과 견주면 사회적 시장경제가 더욱 돋보인다. 에르하르트는 일찍이 자유시장경제론의 대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게 “자유시장경제는 ‘사회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게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이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시장경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현재 중국이 취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하고는 다르다.
허 신부는 한국에 와서 박정희 식의 관치경제, 재벌 위주의 불공정 경쟁, 억압적 노사관계, 방치되는 빈자들의 실상을 목격하고, 사회적 시장경제 도입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노사 대표들을 모아서 독일 연수단을 10여회 조직했고,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경제윤리 강좌를 꾸준히 열었다. 10년 전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들에게 경제윤리 강의를 하러 그와 함께 갔던 기억이 새롭다. 그 선량한 눈빛, 조용하면서도 정열적인 목소리가 그립다. 진정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한국의 은인 허창수 신부를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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