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며칠 전 일본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참패했다. 1955년 창당 후 54년간 승승장구하던 보수 자민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돌풍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자민당 참패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경제정책 실패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이후 활력을 잃고 장기침체에 빠졌다. 경제성장률이 제로 부근에 머물러 ‘헤이세이 불황’ 혹은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나왔다.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는 “구조개혁 없이는 경기회복 없다”를 구호로 내걸었다. 구조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 문제는 고통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느냐 하는 것이다. 2001년 5월 신임 총리 고이즈미는 일본의 국민 스포츠인 스모 시상식에 나타났다. 그는 우승자 다카노하나에게 상을 주면서 “고통을 견뎌내고 잘 싸웠다”고 격려해서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 말은 경제개혁에도 적용될 좋은 말인데, 문제는 고이즈미가 5년 반 집권기 동안 추진한 구조개혁 과정에서 소수의 승자들은 큰 이득을 얻었지만 동시에 다수의 패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은 노동시장 규제 완화, 기업 규제 완화, 법인세 및 소득세 감세, 우편 민영화 등으로서 전형적인 시장만능주의적 구조개혁이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해졌다. 특히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의 일본식 합성어인 ‘프리터’의 수가 1982년 50만명에서 최근 4배로 늘었다. 1984년 600만명(피용자 비중 14.4%)이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2007년에는 1730만명(비중 31.1%)으로 늘었다. 결국 구조개혁은 비정규직 급증, 중산층 붕괴, 격차사회 출현으로 이어졌다(본 난 2009년 4월13일치 ‘격차사회 일본이 주는 교훈’ 참조). 작년 6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낮에 도쿄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살상한 충격적 사건은 격차사회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경기회복을 위한 적자재정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재정 부담 때문에 일본의 국가부채는 계속 쌓여갔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민소득 대비 180%,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선진국 평균값의 두 배가 넘는다. 국가부채가 크니 부채상환 비용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일반회계 구성을 보면 1위가 사회보장비(26%), 2위가 국채상환비(24%)다. 국가 예산의 4분의 1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으니 빚 갚기 위해 세금을 거두는 모양이 돼버렸다. 그 결과 사회보장급여 억제, 지방교부세 삭감이 뒤따라 사회적 약자와 지방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이즈미 시기에는 경제성장률이 2%로 높아졌고, 구조개혁도 호평을 받았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구조개혁이 양극화를 부추겨 민심이반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한 민주당이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일본 경제의 고질을 어떻게 치유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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