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1973년 9월11일 새벽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대통령 아옌데는 6년 임기의 절반밖에 못 채우고 65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옌데는 칠레 상류층 출신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내과 의사였다. 그는 30살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그 뒤 상원의장을 역임한 투철한 사회주의자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세 번의 고배를 마신 뒤 1970년 민중연합 후보로 출마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선거를 통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출현한 것이다. 미국은 자기 집 뒷마당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혐오해서 아옌데의 집권을 방해했고, 집권 후에는 군부 쿠데타를 음양으로 도왔다. 취약한 신생 좌파정권이 부닥친 난관은 경제였다. 아옌데는 구리광산, 은행 등 대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교육,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했고, 어린 학생들에게 무료 우유급식을 했다. 토지개혁과 빈곤층 일자리 마련을 추진했다. 첫해에는 경제 성과가 좋았으나 그 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고, 심한 인플레와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특히 국제시장에서 칠레의 주산품인 구리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수출이 격감하고 외화보유고가 고갈돼 갔다. 대통령의 자제 요청에도 광산노동자들은 85차례나 파업을 했다. 게다가 극우파가 지휘하는 트럭운전사 노조가 파업을 일으켜 경제를 마비시켰다. 위기에 처한 아옌데는 자신의 신임을 국민투표에 묻겠다고 제의했다. 그런데 국민투표일인 9월 11일 새벽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쿠데타의 주역은 바로 3주 전 육군 참모총장에 취임하면서 충성을 맹세했던 피노체트였다. 배후에는 미국의 닉슨, 키신저의 지원이 있었다. 대통령이 사는 모네다궁을 탱크와 비행기로 포위한 군부는 대통령의 국외 탈출을 권유했으나 아옌데는 단호히 거부하고 죽음으로 맞섰다. 그는 여직원들을 귀가시키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6분간 국민에게 최후 연설을 했다. “역사적 순간에 서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 그들은 무력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전진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민중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방송에는 비행기 폭격 소리, 총격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 그는 10여명의 보좌관들과 총을 들고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아옌데의 말대로 되었다. 지금 모네다궁 앞에는 아옌데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그 앞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간다. 동상 밑에 그의 최후 연설이 새겨져 있다. 그는 지난해 칠레 국민 150만명이 뽑은 ‘칠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1위에 올랐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