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스위스 국가경쟁력 순위 평가기관 방문단에
“유독 한국 기업가들은 자기 나라 부정적 평가”
스위스 국가경쟁력 순위 평가기관 방문단에
“유독 한국 기업가들은 자기 나라 부정적 평가”
스위스에는 세계 각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정하는 두 개의 주요 기관이 있다. 하나는 세계경제포럼이요, 다른 하나는 국제경영개발원이다. 두 단체는 원래는 하나였다. 1989년부터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한 이래 1995년까지는 한 몸이었는데, 국가경쟁력 개념과 조사방법론에 대한 이견 때문에 갈라졌다.
지난주 발표된 2010년도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39개국 중 22위를 기록하여 3년 연속 순위가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 5월 발표된 2010년도 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는 한국이 58개국 중 23위를 기록하여 2년 연속 성적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역대 최고기록을 올렸다. 두 기관의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나는 성적이 좋아졌고, 다른 하나는 나빠졌다니 우리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 사례는 국가경쟁력 순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순위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매년 발표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고 있고, 마치 정부의 성적을 평가하는 유력한 기준이라도 되는 양 취급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때는 두 기관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발표되기만 하면 보수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서특필하면서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세계경제포럼의 평가방식에는 객관적, 수량적 자료와 더불어 각국 기업가에 대한 주관적 설문조사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가들에게 설문을 보내 각국의 경제사정,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낮은 이유를 조사하러 한국 학자들이 스위스의 양대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그 기관의 책임자로부터 한국 대표단이 들은 대답은 이렇다. “그것 참,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한국 기업가들은 자기 나라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도 모르겠어요.” ‘누워서 침 뱉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1990년대 국가경쟁력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기업경쟁력 개념은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국가경쟁력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첫째 이윤 획득이 목표인 기업과 달리 국가의 기능은 복잡하므로 국가경쟁력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고, 둘째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고, 셋째 국가경쟁력에 대한 집착은 국내 공공정책을 왜곡하고 국제경제체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국가경쟁력에 웃을 필요도 울 필요도 없다. 국가경쟁력은 개념 자체에 문제가 많고, 조사방법도 문제가 많아 신뢰할 만한 게 못 된다. 앞으로는 국가경쟁력 순위가 발표되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초연하게 우리 할 일이나 하면 좋겠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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