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지난주에는 세계 금융역사상 의미를 가질 만한 두 개의 사건이 겹쳤다. 9월15일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2년이 되는 날이었고, 9월12일에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 27개국 대표들이 스위스에 모여서 바젤Ⅲ 협약에 합의했다. 1840년대 바이에른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리먼 형제들이 잡화 행상, 면화 중개상 등을 거쳐 쌓아올린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사건치고는 대사건이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세계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고 하면 바젤Ⅲ 협약은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의 첫걸음이다.
바젤Ⅲ 협약의 핵심은 전세계 은행들이 적립해야 할 자본금에 대한 규정이다. 종전에는 자산 대비 2%의 자본금을 적립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7%로 높아졌다. 좀더 상세한 내용을 보면 위험성에 따라 가중한 자산 대비 자본금 및 사내유보이익의 크기를 4.5%로 규정했고, 추가로 2.5%를 요구하는데 이는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2.5% 적립에 실패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이익 배당 및 임원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을 제한하므로 실질적으로는 거의 의무조항이나 마찬가지로 해놓은 점이다. 새로 정할 자본금 비율을 둘러싸고 각국의 주장은 4%에서 10% 사이에서 큰 이견이 있었는데, 7%는 중간쯤의 값으로 절충한 셈이다. 새로운 자본금 규정은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 각 은행은 2019년까지 이 목표를 달성하면 된다.
자본금 비율이 3배 이상 높아진 것은 일견 상당한 진전으로 보이며, 일부 전문가들은 바젤Ⅲ 협약으로 인해 앞으로는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는 재현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논의에서 제시됐던 여러 가지 획기적, 개혁적 제안들에 비하면 이번 합의는 어정쩡한 절충이요, 금융계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금융계로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라는 것이 중평이요, 합의 발표 직후 세계 주요 은행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것만 봐도 금융계로서는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과연 이번 안전장치로 금융안정을 기대해도 좋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관적 견해도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대표논객 마틴 울프는 이번 바젤Ⅲ 협약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며, 앞으로 금융위기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그는 과거 100년간 영국, 미국 은행의 자본금 비율이 오랫동안 10~20%에 달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4~7%의 자본금 비율은 너무 낮아서 위험하다는 점, 그리고 자본금 비율을 높이더라도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효과가 미미할 정도로 작다는 점, 그리고 현재 영미의 은행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 과잉성장해 있다는 점 등을 들면서 좀더 근본적인 규제를 주문하고 있다. 그는 이번 바젤Ⅲ 협약은 호랑이를 그리려다 쥐를 그린 형상이며, 그 쥐조차 울지 않는 쥐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고 있다. 과연 바젤Ⅲ 협약이 호랑이가 될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나갈 듯 떠들썩하더니 쥐 한마리가 나왔다는 뜻)이 될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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